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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과 북에 이용당한 비극적인 삶 <이중간첩>
2003-01-24

1979년 평양 김일성 광장, 거대한 인민군의 물결속에서 행진하는 림병호(한석규) 소좌. 숨가쁜 추격을 따돌리며 그가 동베를린을 통해 위장귀순을 하며 영화는 시작된다. 악랄한 고문 앞에서도 ‘자유를 찾아 내려왔다’고 주장하던 림병호는, 일단 이용해보자는 ‘윗쪽’의 판단에 따라 백승철(천호진) 단장의 감시 아래 안기부에 기용된다. 몇년간 매일밤 윤수미(고소영) 아나운서가 진행하던 라디오 프로그램을 듣던 림병호는 마침내 기다리던 암호지령을 받는다. ‘콘탁트 데제’(디제이와 접선하라). 림병호는 북으로 건너간 아버지로 인해 고정간첩으로 활동하고 있는 윤수미를 통해 청천강(송재호)으로부터 지령을 받으며 남쪽 안기부의 대북작전을 수포로 만들게도 하지만, 점차 위험에 처하게 된다.

<이중간첩>은 제목부터 직설적이다. 그리고 그 우직함 만큼, 하고 싶은 많은 이야기를 숨기지 않는다. 장점이자 단점이다. 우선 귀순자를 이용하고 버리는 과정이나, 유학생을 끌어들여 간첩단 사건을 조작하는 것 등 80년대 예민한 일들을 거침없이 드러낸다. 그런 면에서 주제감 묵직한, 픽션화된 정치다큐멘터리다. 한편 남과 북 앞에서 최인훈의 <광장>의 이명준이 했던 고민을 똑같이 느꼈음직한 림병호에 초점이 맞춰질 땐 진한 인간드라마가 되기도 한다. 또 윤수미와 림병호의 관계에선 멜로, 몇몇 장면에선 액션, 전체적으론 약간의 정치적 스릴러의 색깔까지 가미돼 있다.

아무리 가벼운 삶을 선호하는 세상이 되었다고 하지만, 이런 과거와 이런 희생이 있었다고 직접 들이미는 작품을 외면하긴 힘들다. 고문 장면에서 흘러나오는 <제3한강교>와 <무인도> 노래는 80년대의 상처를 기억하는 사람들의 감정을 들쑤신다. 림병호와의 관계에서 아쉬움을 남기지만, 천호진이나 송재호씨가 맡은 캐릭터는 그들의 연기와 맞물려 잊을 수 없는 강렬함을 남긴다. 그런 면에서 비교적 탄탄한 이야기를 가진 <이중간첩>은 적어도 시대의 리얼리티 확보에는 성공했다.

하지만 관객들이 편히 숨쉴 장면이 하나도 없으면서도 그렇다고 내내 긴장감이 넘치지도 않는다는 지적은 아프다. 지나치게 한석규라는 배우 개인에 의존한 극전개 탓일 게다. 24일 개봉.

김영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