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프랑스 영화의 거장 모리스 피알라 (Maurice Pialat)가 77살을 일기로 타계했다.
우리나라에서도 <반 고흐>라는 작품을 통해 소개된 바 있는 모리스 피알라는, 술꾼에 바람둥이인 아버지와 남편 뒤치닥거리에 아들은 늘 뒷전이기만 한 어머니로 인해 고독하고 불행한 유년 시절을 보냈다. 후에 그의 냉소적이고 비관적인 기질은 이러한 어린 시절의 소외감과 무관하지 않을 듯 하다. 그의 성격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유명한 일화. 1987년 <사탄의 태양 아래서>라는 영화로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을 때 그의 수상에 불만을 품은 관객들을 향해 그는 불끈 쥔 주먹을 들어올리며 “당신들이 나를 좋아하지 않는다면, 나 또한 당신들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다”고 수상 소감을 밝혔다. 피알라의 이처럼 꼿꼿하고 강직한 성격은 평생 그의 인간관계 뿐 아니라 영화 투자자를 구하는 데도 상당한 어려움을 야기했다.
반 고흐와 같은 화가를 꿈꾸며 국립 예술학교에 들어갔던 피알라는, 1960년 피에르 브론베르제 (프랑스 ‘누벨바그’의 출현에 기여한 제작자)의 후원으로 <사랑은 지속된다>라는 단편 영화를 만들고 베니스 영화제에서 수상했다. 그러나 그와 비슷한 시기에 영화계에 입문한 누벨바그 주자들에 비해 그는 첫 장편 영화를 만들기까지 거의 10년의 시간을 단편만을 만들며 기다려야 했다. 그에게는 프랑수아 트뤼포나 장 뤽 고다르처럼 입신양명을 도와줄 비평자도, 알랭 레네처럼 ‘출중한’ 학벌도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처럼 ‘지루한’ 기다림은, 어쩌면 피알라의 작업 스타일을 규정짓는 본질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는 한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 다른 사람보다 몇 배의 시간을 필요로 하는 ‘느린’ 예술가군에 속한다. 피알라는 플로베르가 평생 6권의 책을 썼듯이 30년 동안 열 편의 영화밖에 만들지 않았다. 그러기에 한 편, 한 편이 ‘걸작’에 이르고, 한 영화는 이전 작품에 대한 주제적이고 형식적인 전복성을 담고 있다. 가령 첫 장편인 <벌거벗은 아이>(1968)는 불행한 한 아이의 좌절을 비직업 배우들을 고용해 드라마적인 감동을 배제한 채 사실적으로 묘사한 반면, 두번째 영화 <우리는 함께 늙어가지 않을 것이다>(1972)는 사랑하는 커플의 위기를 스타 배우들을 기용해 심리적인 묘사로 극적인 재미를 더한다. 이 두 작품에서 보이는 ‘상처받은 유년기’와 ‘사랑하는 남녀의 갈등’이라는 주제는 상드린 보네르가 출연한 <우리의 사랑을 위하여>(1983)나 제라르 드 파르디유가 출연한 네 편의 영화 (<루루> (1980), <폴리스>(1985), <사탄의 태양 아래서>, <갸르쉬>(1995)) 모두에서 드러난다.
피알라는 누벨바그 세대와 같은 시기에 작업했지만 그들과 스타일이 전혀 달랐다. 그의 영화는 고다르 영화처럼 형식주의로만 흐르지도 않고, 클로드 샤브롤의 영화처럼 심리 분석으로만 치우치지도 않는다. 그는 프루스트처럼 무엇보다 자신의 내면적 진실을 찾기 위해 작품을 만들지만 (이는 분명 가장 고전적인 창작가의 태도다), 그것은 텍스트 어디에도 직접적으로 주어져 있지 않다. 그가 현대 프랑스 영화사에서 독특한 위치를 점하는 이유는 이처럼 인간주의적인 질문이 형식에의 추구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그렇다.
파리/박지회·파리 3대학 영화학 박사과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