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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과 달리 액션영화로 변신한 <반지의 제왕: 두 개의 탑>
2003-01-16

프로도는 어디로 갔나?

<반지의 제왕> 3부작 중 가장 영화화하기 까다로운 책은 제2부인 <두개의 탑>이다. 피터 잭슨과 그 일당들도 이 부분을 어떻게 각색해야 할지 몰라 벽에 머리를 골백번쯤 박았음이 분명하다.

자, 한번 생각해보자. <반지의 제왕>은 말이 3부작이지 하나의 스토리로 이어진 장편이다. 각 책들은 소설의 부분으로서 존재할 뿐, 개별 책의 자체 완결성 같은 건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다시 말해 완결된 상업용 장편영화를 만들 만한 구성이 나오지 않는 것이다. <반지원정대>나 <왕의 귀환>은 그래도 시작과 결말이라도 있지만 <두개의 탑>은 그런 것도 없다.

<두개의 탑>의 구성을 다시 한번 살펴보자. 이 책은 사실 전혀 다른 내용을 다룬 두편의 이야기를 그냥 병렬 배치한 것이다. 첫 번째 도막은 아라곤 일행이 로한에서 겪는 모험담과 메리와 피핀이 엔트를 만나고 이센가드를 정복하는 이야기이고, 두 번째 도막은 프로도와 샘이 모르도르까지 가는 여정에 대한 것이다. 둘은 비슷한 시기에 일어나지만 내용면에서는 거의 연관성이 없다.

이런 내용의 소설을 충실하게 영화화한다면 결과는 아주 이상해진다. 영화 하나에 두개의 클라이맥스가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그중 하나는 아슬아슬한 클리프행어만 존재할 뿐 결론도 없다. 이게 그냥 미니 시리즈라면 그냥 밀어붙일 수 있다. 하지만 관객이 다음 편을 보기 위해 1년을 기다려야 한다면 이런 구성은 상당히 큰 문제가 된다.

잭슨 일당의 해결책은 원작 속의 두 이야기(아니 메리와 피핀의 모험까지 포함하면 셋이다)를 적당히 나누어 배치해서 하나인 것처럼 관객을 속이는 것이었다. 아무래도 잭슨은 지금 그의 경쟁작이 된 <스타워즈> 시리즈에서 은근슬쩍 덕을 많이 보고 있는 듯하다. <제국의 역습>이 바로 이런 형식을 취한 작품이니 말이다. 이런 수법은 더 영화적이기도 하다. 영화는 장르 성격상 소설보다 더 수월하게 장르를 바꿀 수 있다.

문제는 이런 식의 변경이 단순히 이야기의 순서를 바꾸는 데 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순서의 변경은 각 이야기들의 중요성을 바꾸고 결과적으로 내용의 변화까지 만들어낸다.

사라진 프로도, 부풀려진 헬름 전투

일단 영화의 내용을 검토해보기로 하자. 영화는 원작과는 달리 메리와 피핀의 이야기를 아라곤 일행의 이야기나 프로도의 이야기와 동등하게 다루고 있다. 엔트들의 이센가드 습격 부분을,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간접적으로 전달되는 대신, 직접 보여주는 것이다.

원작에서는 프로도 일행의 모험과 같은 비중으로 다루어졌던 아라곤 일행의 모험과 헬름 협곡의 전투는 훨씬 비중이 커졌다. 에오윈과 같은 캐릭터는 등장 횟수도 늘어났고 몇몇 액션장면들이 추가되었으며 협곡의 전투 역시 더 많은 캐릭터들과 시간이 동원되는 거대한 괴물로 다시 태어났다.

반지운반자 프로도의 모험은 줄어들었다. 소설 막판에 나오는 셸롭 이야기는 3편으로 넘어갔다. 대신 소설에서는 비교적 조용하게 다루어진 파라미르와의 만남 장면이 이번 영화의 클라이맥스에 참가하게 되고 이들은 비교적 안전한 결말을 맞는다.

아까도 말했듯이, 이런 변형의 가장 큰 목적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같은 흐름으로 흘러가는 하나의 이야기를 만드는 것이다. 당연히 영화가 묘사하는 세 가지 이야기들은 모두 같은 호흡에 맞추어 진행되어야 하며 비슷한 내용을 따라야 한다. 프로도 일행 이야기가 파라미르의 만남을 클라이맥스로 하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프로도 이야기의 클라이맥스인 셸롭 이야기는 다른 두 이야기들과는 달리 전쟁 이야기가 아니다. 셀롭 이야기를 빼고 프로도와 파라미르 이야기에 전쟁장면을 담아 확대하는 편이 이야기를 끌어가기가 더 수월하다.

이런 변형 덕택에, <두 개의 탑>은 톨킨 버전 <지상 최대의 작전> 비슷한 영화가 된다. 피터 잭슨과 그 일당은 코넬리어스 라이언이 노르망디 상륙작전 당시의 유럽을 전체적으로 조망하며 거대한 이야기를 끌어갔던 것처럼 종횡무진 미들 어스의 전쟁터를 누비며 하나의 커다란 그림을 그린다. 한마디로 전쟁스펙터클영화가 된 것이다.

덕택에 모든 사건들은 전쟁이라는 필터를 통해 이야기된다. <반지의 제왕>을 구성하는 두개의 축인 여정과 전쟁 중 여정이 거의 떨어져나간 것이다. 이제 모든 이야기들은 투쟁에 집중한다.

톨킨 순수주의자들이 이를 갈았던 변경 부분도 이로써 설명이 가능하다. 원작의 온화하고 이해심 많은 파라미르는 피터 잭슨의 영화 버전 <두개의 탑>에서는 별 도움이 안 된다. 이 영화는 대화와 이해 대신 결투와 갈등을 원하고 있다. 그 결과 불쌍한 파라미르는 수염 모양만 조금 바뀐 보로미르의 클론 버전 비슷하게 등장해서 전쟁광 흉내나 내게 된다. 그래야 파라미르와 프로도 일행의 갈등도 커지고 그 자신의 내면 갈등 역시 투쟁의 드라마를 형성할 만큼 분명해진다. 프로도의 내면의 갈등이 더 극단적이 된 것도 마찬가지. 반지의 요정들에게 반지를 자발적으로 바치고 반쯤 미친 채 샘에게 스팅을 들이대는 식으로 내면의 갈등을 부풀려야 전쟁과 투쟁이라는 영화의 중심 주제 속에 이 캐릭터가 안전하게 안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헬름 협곡의 물량공세, 어쩌면 가장 영화적

주제가 주제이다보니 헬름 협곡 전투의 비중이 높아지는 것도 당연하다. 이건 주제의 만유인력 법칙이라 부를 만하다. 영화가 일단 주제를 정하면 영화의 무게중심은 그 주제를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사건으로 자연스럽게 옮겨지게 된다. 헬름 협곡의 전투는 일단 스펙터클을 가장 쉽게 표현할 수 있고, 가장 많은 사람들이 개입되어 있으며, 전쟁영화라는 장르에도 가장 잘 어울린다. 아무리 프로도 이야기가 옆에서 폴짝폴짝 뛰며 자기가 핵심 모험담이라고 우겨도 소용없다. 영화는 자연스럽게 헬름 협곡으로 흘러간다.

잭슨과 일당들은 마치 격전지에 보급물자를 투하하는 비행기처럼 모든 극적 요소들을 헬름 협곡에 퍼붓는다. 한번 원작의 헬름 협곡 장면의 페이지 수를 세어보고 영화의 헬름 협곡 장면 러닝타임을 잰 뒤 둘을 비교해보라. 부푼 정도가 장난이 아니다. 캐릭터들은 커지고, 이야기는 더 장엄해지며, 원작에서는 근처에도 가지 않았던 캐릭터들이 은근슬쩍 삽입된다. 로한에 사는 모든 사람들은 이 전투에 어떻게 반응했는가로 그들의 가치가 평가된다.

엉겁결에 부푼 호전성은 메리와 피핀의 이야기에서도 큰 비중을 차지한다. 이들이 엔트들을 선동하기 위해 떠들어대는 연설을 한번 들어보라. 마치 2차 세계대전 중 짬이 난 처칠이 뒤에서 대필해준 연설문처럼 들린다. 두 발 달린 나무들이 괴물들을 밟아대는 이야기지만, 엔트들의 이센가드 정복은 이 영화에 나오는 그 어떤 사건들보다도 현대전의 인상을 풍긴다. 이야기의 내용 때문이 아니라, 어쩌다 보니 영화를 다루는 방식이 현대 전쟁영화의 수법을 물려받았기 때문이다.

이러는 동안 영화는 전쟁을 통해 서서히 자기만의 목소리를 내게 된다. 특별히 스토리 진행을 바꾸지 않으면서도 소설이 다룰 수 없는 스펙터클을 살릴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으니 굳이 멈출 필요가 없는 것이다. 헬름 협곡에서건, 이센가드에서건, 전쟁이 벌어지는 동안 영화는 거의 최면에 걸린 것처럼 살육과 파괴의 흐름에 휩쓸린다. 원작소설과는 달리 영화 <두개의 탑>은 줄거리를 설명하기가 쉽지 않다. 영화의 핵심이 줄거리와 거의 무관하다고 할 수 있는 파괴의 운동 자체에 있는데, 이걸 어떻게 정리할 수 있을까

피터 잭슨과 그 일당들은 <두개의 탑>을 피가 끓어오르는 박진감 넘치는 블록버스터 액션영화로 만들었다. 이것 자체는 결코 나쁜 게 아니다. 어떻게 보면 그들은 영화라는 매체에 가장 잘 맞는 형식으로 이야기를 맞춘 것이다. 만약 여러분이 스크린 위에 펼쳐지는 장려한 액션에 넋을 잃었다고 해도 얄팍한 관객이라고 탓할 사람은 없다. 꼭 언어로 정리되는 주제만이 예술의 일차 목적은 아니다. 이건 모차르트의 25번 교향곡을 즐기는 것과 같다. 문학적 주제는 없지만 바로 그런 움직임 자체에 미적 가치가 놓여 있는 것이다.

액션영화가 되어버린 톨킨의 전설

그러나 슬슬 여기서 우린 잭슨 일당들이 놓친 것에 대해 이야기해봐야 하지 않을까 좋은 액션영화를 만난 건 분명 기분 좋은 일이다. 하지만 과연 톨킨이 쓴 책이 액션물이었는가 그가 과연 이런 식의 순수한 전쟁물을 썼었나 그가 썼던 글은 노래와 거품 이는 맥주가 가득한 옛 전설이 아니었던가

모든 사람들이 꼭 순수주의자가 되어 원작을 수호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만약 잭슨 일당들이 원작의 정신을 충실하게 따를 생각이었다면 원작이 가지고 있던 그 낙천적인 시적 정신과 주인공의 여정에 대해 더 신경써야 하지 않았을까 원작에서 호비트들은, 몸집은 작지만 키 큰 인간들이나 요정들만큼이나 중요한 존재였고 바로 그게 원작의 핵심이기도 했다. 하지만 원작을 읽지 않고 영화를 본 사람들 중 상당수는 프로도가 주인공인 이유를 끝끝내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영화의 휘황찬란한 액션들 속에 끼지 못한 호비트들은 그냥 작기만 하다(이 영화의 게임 버전에 프로도의 역할 자체가 없다는 걸 한번 생각해보시길 바란다).

<반지의 제왕>은 아직 미완성인 영화이다. 전작을 평가하기 위해서는 1년 뒤 <왕의 귀환>이 나올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아니, <두개의 탑>과 <왕의 귀환>의 확장판 DVD가 모두 나오는 2년 뒤까지 기다려야 제대로 된 평가가 가능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과연 확장판에서 잭슨은 극장판 영화가 빠트린 요소들을 보완할 수 있을까 그럴 가능성은 분명히 있다. <반지원정대>의 확장판은 극장판 영화보다 훨씬 여유있고 즐거운 작품이기 때문이다. <두개의 탑>과 <왕의 귀환>이 같은 방식으로 뒤를 이어주길 바랄 뿐이다.듀나 djuna01@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