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tory
우울증에 시달리는 애니메이터 조이(로빈 튜니)는 흘러간 팝송을 들으며 로맨틱한 환상에 빠지는 것이 낙이다. 직장 최고의 킹카가 손짓하는 행운이 찾아온 날, 조이는 스토커에게 납치돼 차를 몰다가 경찰을 숨지게 한다. 스토커가 사라지고 죄를 뒤집어쓰게 된 조이는 재판을 받을 때까지 행동반경을 제한하는 전자 발찌를 착용하게 된다. 조이는 사생활의 자유를 찾고 진범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와중에, 유일한 방문객인 발찌 프로그램 관리자 빌(팀 블레이크 닐슨)에게 묘한 감정을 느끼기 시작한다.
■ Review
여기, 로맨틱코미디 사상 가장 기구한 운명의 여인이 있다. 애정 결핍으로 우울증에 시달리는데, 사랑의 이름으로 나타난 남자는 하필이면 사이코 스토커다. 그가 불러온 재앙으로 말미암아 철창 없는 감옥 신세를 지게 된 여자는 자신에게 진짜 ‘족쇄’를 선사한 또 다른 남자에게 연정을 품는다. 기묘한 아이러니다.
<체리쉬>를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극을 이끌어가는 캐릭터의 비전형성이다. 뭇 남성의 사랑을 받는 몸도 아니요, 환골탈태의 뻔한 수순을 밟아가는 것도 아니요, 보람직하게 자아실현을 해 보일 야심도 없는, 함량 미달의 주인공. 발찌의 모뎀과 센서가 제한하는 행동반경을 넓혀보려는 노력보다 가상한 것은, 마음의 족쇄를 풀고 ‘타인과의 관계’를 돌아보기 시작한다는 사실. 남의 자유를 옥죄는 전자 발찌 관리자, 평생 휠체어에 의지해 살아온 아래층의 앉은뱅이 남자, 사랑이라 믿는 여인에게 광적으로 집착하는 스토커. 조이가 이들과 관계를 맺는 방식에 따라 영화는 멜로로, 코미디로, 스릴러로, 방향을 바꿔 나간다. 신선한 시도임엔 틀림없지만, 아우르는 솜씨는 매끄럽지 못하다.
제목 <체리쉬>를 노래(‘쿨 앤 더 갱’이 아니라 ‘디 어소시에이션’의 <체리쉬>)에서 따온 데서 알 수 있듯이, 음악은 이 영화에서 ‘음악 그 이상’이다. 주인공 조이가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탐닉하는 철지난 사랑 노래는 감독이자 작가인 핀 테일러에 따르면, 멜로디는 달콤하지만 가사는 청승맞은 경향이 있다고. 그러한 “올드팝의 아이러니”가 영화 속에 장난스럽게 녹아 있는데, 극의 흐름과 무관하게 삽입돼 폭소를 자아내는 뮤직비디오식 판타지가 그것이다.
<체리쉬>는 조이 역의 배우 로빈 튜니를 재발견한 영화라 할 수 있는데, 로빈 튜니는 그간 <엔드 오브 데이즈> <버티칼 리미트> 등 개성없는 블록버스터에 묻혔던 매력과 재능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조이를 유혹하는 느끼한 킹카 역의 제이슨 프레슬리의 변신도 <베벌리힐즈 90210>의 브랜든을 떠올린다면 꽤나 파격적으로 느껴질 것이다. 박은영 cinepar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