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감도 에로티시즘” “성인 전용관” “월드 에로틱 시리즈” “매일 밤 은밀한 유혹이 시작된다” ….
케이블텔레비전과 위성(스카이라이프)의 영화채널에 리모컨을 맞추면 밤낮 가리지 않고 낯뜨거운 화면들을 자주 만날 수 있다. 특히 유료채널은 성인채널을 표방하며 남녀가 알몸으로 얽혀 야릇한 신음소리를 내는 장면이나 알몸쇼, 여성의 몸을 학대하기도 하는 등의 갖가지 성적 행위를 담은 장면들로 시청자를 유혹하고 있다. 많은 시청자들은 ‘성인 전용극장 설립도 막는 이 나라에서 무슨 안방 성인 전용관’하며 고개를 갸웃거릴 수도 있다.
이렇게 민망하고 자극적인 화면이 안방에 넘쳐나는 것은 지난해 3월 출범한 위성(스카이라이프)과 케이블의 가입자 확보 각축전이 거세진 데 따른 것이다. 특히 유료 채널들의 가입자 잡기 경쟁은 새해 들어 더욱 치열해져 갈수록 안방은 낯뜨거운 영화 ‘상영관’을 방불케 할 듯하다. 미드나잇 채널은 지난 1일부터 방송시간을 6시간에서 8시간으로 늘렸다. 지난해말 스파이스티브이가 밤 11시부터 새벽 5시까지 방송하던 성인영화 방송 시간대를 밤 10시부터 새벽 6시까지로 2시간 늘린 데 대해 맞불을 놓은 것이다.
현재 케이블과 위성의 영화채널은 모두 23개. 이 가운데 캐치온 플러스, 스파이스티브이, 미드나잇채널 등 6개 채널이 돈을 내야 볼 수 있는 유료 채널이다. 방송법상 누구나 방송위원회에 등록만 하면 사업자가 될 수 있어 비디오만 틀어주면 되는 영화 채널은 계속 늘어날 전망이다. 현재 케이블과 위성 가입세대는 750만(케이블 700만, 위성 54만) 정도로 이 가운데 유료영화 채널 가입자는 케이블 30만여세대, 위성 5만여 세대등 35만여 세대에 이른다.
유료채널 성인물로 심야시간대를 채워가자 ‘유료 영화채널=성인채널’이라는 인식이 시청자 사이에 확산되고 있다. 자연 시청자는 유료채널에 대해 좀더 야한 것을 기대하며 케이블이나 위성을 신청하고 있다는 게 업계 분석이다. 결국 유료채널에서 신작이나 예술적 영상을 기대했던 시청자는 멀어지고 지상파가 됐건 위성·케이블이 됐건 어디에서도 작품성 있는 영화를 보기 힘들게 됐다. 넘쳐나는 영화들 속엔 에로의 ‘뿌리’만 길고도 깊숙이 자라 안방은 갈수록 이런 영화로 도배되다시피하는 셈이다.
스파이스쪽은 “일반 영화채널에서도 에로 영화가 나가고 있어 시청자로부터 유료 채널의 차별성이 없다는 지적이 많았고, 스카이라이프쪽도 시간을 늘려주기를 바랐다”고 말했다. 미드나잇 채널쪽은 “인터넷에 익숙하지 않은 40대들을 중심으로 가입자가 꾸준히 늘어가는 추세”라며, “밤 10시는 지상파에서 위성으로 시청자들이 채널을 돌리는 시간인데다 밤 11시는 다음날 출근해야 하는 가입자들에게 너무 늦다는 항의가 많았다”고 방송시간을 늘린 이유를 댔다. 그는 “사실 방송시간을 연장하면 컨텐츠 비용과 송출료 등 한달에 수천만원의 돈이 들지만 상대사가 시간을 늘리는 상황에서 가입자 이탈문제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덧붙였다.
최근엔 유료 영화채널이 아닌 일반 영화채널들도 심야시간대에 채널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저질 에로물을 내보내고 있다. 또 지역유선방송국(SO)이 홈쇼핑 광고를 틀어주면서 값싼 ‘성인용’ 영화를 끼워넣기로 방송하고 있다.
영화관도 아닌 안방에 이렇듯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화면이 파고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방송위원회에 등록만 하면 영화채널이 마구 쏟아지는 상황에서 지상파와 별도로 위성, 케이블에 맞는 심의규정조차 없다는 것이다. 물론 청소년시청 보호시간대를 제외한 시간, 즉 성인 시청시간대 프로그램에 대한 심의규정도 별도로 없다.
이에 대해 시청자단체들은 “아무리 유료채널이라 하더라도 가족이 공동사용물인 텔레비전에 방송을 내보내는 위성이나 케이블은 ‘방송의 공적책임 조항’의 적용을 받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야한 채널 문제는
등록제에 별도 심의기준 없어
방송위 징계조처 안먹혀
“남녀 주인공의 정사와 애무장면을 여과없이 방송해 경고조치함.” “노골적인 성기 애무장면을 여과없이 방송해 경고 및 해당 방송프로그램 관계자에 경고 조치함.”
지난해 방송위원회가 유료채널에 성표현 장면을 문제삼아 내린 징계건수는 채널당 많게는 80건에 이른다. 그러나 방송위는 거듭된 경고나 시청자에 대한 사과명령 징계외에는 채널 폐쇄등 강력한 조처를 취할 수 없다. 또 같은 영화로 서너번의 징계를 받지 않는 한 벌과금도 없다.
방송위는 “올해 방송법 개정을 통해 유해프로그램에 대해 바로 벌과금을 물리는 경제제재를 검토하고 있다”며, “방송사업자 연수를 실시해 자체심의를 강화하는 한편 방송 등급제를 제대로 정착시켜 시청자 스스로 프로그램을 가려볼 수 있도록 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시민단체는 방송위가 심의를 게을리하고 있다고 질타하고, 유료채널들은 돈내고 보는 성인시청자들을 고려하지 않은 채 천편일률적인 심의만 하고 있다고 불만이다.
방송위원회 심의부쪽은 “외국도 우리와 사정이 비슷하다”며, “등록취소 등 법적 제재를 해도 등록제 상황에서는 유사채널이 수없이 생겨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유료채널의 볼거리도 보장해야 하기 때문에 별도의 심의 기준이 필요하다”면서도, “아직까지 일반 국민정서도 무시할 수 없다”고 심의의 곤혹스러움을 내비쳤다.
성연철 기자 syche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