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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신혜밴드의 새 앨범 <병아리 감별사 김씨의 좁쌀 로맨스>
2003-01-02

그림자를 발에 꿰매다

김형태가 이끄는 황신혜밴드(이하 황밴드)의 새 앨범 <병아리 감별사 김씨의 좁쌀 로맨스>는 황밴드의 기념비적인 새 출발을 알리는 앨범이다. 앨범의 제목은 황밴드의 전매특허인 ‘일상을 코믹하게 비비 꼬기’를 연상시키면서 황밴드의 원래 기조를 유지하는 듯하지만 음악을 들어보면 오히려 너무 황밴드다운 앨범 제목이 무색할 정도로 새롭다.

음악의 전체적인 기조는 테크노다. 음악의 생산방식에서부터 비롯한 것이겠지만 김형태의 원맨밴드적인 성격이 더 강해졌다. 그의 음악을 ‘뽕라운지’라 부르면 어떨까. 이박사식의 뽕짝 테크노적인 요소들을 하우스에 접목시킨 사례는 많았지만 그것을 ‘라운지’적인 요소와 접목시킨 케이스는 이번이 처음 아닌가 싶다. 이러한 ‘라운지’적인 측면은 김형태가 그동안 각종 전시회, 연극 등에서 특유의 ‘뽕라운지’를 위탁, 제조해왔던 것과 관계가 깊다. 실제로 몇개의 트랙은 쌈지스페이스 같은 갤러리에서 들었던 음악이기도 하다. 이 라운지적인 기분은 리듬의 특수성에서 오기도 한다. 이번 앨범에서 그의 리듬은 8비트, 16비트처럼 딱딱 떨어지는 박자들을 많이 배제하고 있다. 그는 드러머가 아니다. 또 어려서부터 드러머의 박자들에 훈련된 록뮤지션이 아니다. 그의 리듬은 중심이 없이 흩어져 있는데, 중심이 없는 그 리듬들은 그의 음악을 일종의 라운지로 만들고 있다.

그러나 그가 엮는 음악의 회랑을 스윽 휘둘러보는 일은 그리 즐겁지만은 않다. 음악에서 세월의 냄새가, 외로움의 냄새가 나기도 한다. 그가 멜로디를 연주하기 위해 주로 쓰는 물 흐르는 소리 같은 키보드(뽕키보드)의 울림소리(리버브)는 한편으로는 쾌적한 갤러리의 느낌이 나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자기 악기를 짐처럼 메고 하염없이 터널 속을 걷는 방랑자의 발걸음에서 울려나오는 소리같이 들리기도 한다.

첫 트랙 <퍼즐>과 마지막 트랙 <꽃과 곰 아줌마>는 이번 앨범의 백미. 이 노래들은 김형태가 새 앨범을 만들면서 품은 음악적 혁신들에 관한 야심찬 아이디어들을 압축하고 있다. 특히 첫 트랙에 삽입된 강태환의 색소폰 소리는 아래위의 배음으로 갈라지면서 황밴드의 음악에 부여될 두께를 예고하고 있다. 그 ‘두께’가 이번 앨범의 핵심이 아닌가 싶다. 이번 앨범을 듣고 보니 그동안의 황밴드 음악에는 두께라는 항목이 조금 부족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두께라는 건 자신이 추구하는 걸 전달하는 과정에서 그 이면이 동시에 드러날 때 생긴다. 그러니까 어떤 의도를 품고 있는데 그것을 뒤로 잡아끄는 것이 동시에 그 의도 속에 섞여 있다는 이야기이다. 물론 듣고 보면 웃다가 슬퍼지는 게 예전 황밴드의 음악이긴 했지만, 거기에는 그림자가 없었다. 그러나 이번 ‘뽕라운지’는 그림자를 지니고 있다. 작업실에서 하염없이 샘플된 데이터들을 뒤적이는 30대 베드룸 뮤지션의 새벽을 보여주는 소리들이 여기저기서 들린다. 그 특유의 코믹한 내러티브를 얹은,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코믹하게 들어야 하는 노래들에서조차 그런 고독한 새벽의 그림자들이 떠다닌다. ‘미스 김!’을 부르는 목소리는 그가 난무하는 전자음들 속에 자신의 은밀한 욕망을 싣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게 한다. 새벽의 그림자들. 충족되지 않은 욕망의 흔적들일 그 그림자들이 그의 뽕라운지에 혼을 부여한다. 이번 앨범에서 그가 들려준 음악이 절실하고 새로운 느낌인 것은 아마도 그 혼의 떠다님 때문일 터이다.성기완/ 대중음악평론가 creole@hite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