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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몸에 깃든 욕망과 화해 <그 집 앞>
2002-12-27

지난 23일 대학로 근처 한 지하카페의 촬영현장에서, 김진아 감독은 깡마른 얼굴에 두 눈만 반짝이고 있었다. 지난해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셀프 다큐 <김진아의 비디오일기>를 통해 주목받은 그는 장편 극영화 데뷔작 <그 집 앞>을 찍고 있다. ‘여성 몸의 욕망’이란 주제는 비슷할 지 모른다. 하지만 자폐적인 생활 속에 거식증을 앓던 6년 동안 “남들에게 보여줄 것이라고 전혀 상상도 않으며” 자신을 기록해나갔던 전작에 비해 ‘보여지는 것’을 전제로 한 극영화는 의미가 각별하다.가인(최윤선)은 김 감독의 분신과도 같은 인물이다. 미국 유학생인 그는 자기 몸에 대한 혐오감을 갖고 병적으로 다이어트에 집착한다. 남자친구 희수(정찬)을 한국으로 떠나보낸 뒤 유부남 준과 사랑없는 섹스를 하고 거식과 폭식을 반복한다. 준의 아내 도희(이선진)는 삭막한 결혼생활에 회의를 느껴 유럽으로 떠나고 친구와 충동적인 섹스로 임신을 한다. 남편과 가인의 관계를 알게 되고 낙태를 결심한 도희는 서울의 거리를 헤맨다. 닮은 듯, 전혀 다른 두 여성이 만나는 지점은 “과연 여성은 자신의 몸·욕망을 받아들이고 화해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다. “대부분의 여성들이 고민하지만 정확히 발언하거나 공론화되지 않잖아요. 특히 사회적으로 통제·억압받는 식욕과 성욕은 혼자 있는 시간에만 드러나죠.” 여자가 혼자 옷을 벗고 자신의 몸을 본다든지 체중을 잰다든지 자위를 하는 ‘은밀한’ 욕망을 “극영화를 통해 폭로”하는 것은 ‘화해’로 가기 위한 과정이다. 영화진흥위원회의 지원금 3천만원 외에, 미국에 독립영화사인 픽쳐 북 무비스라는 회사를 등록해 융자를 받았다. 한국촬영은 청년필름과 손을 잡았다. 순제작비 1억원의 극도의 저예산영화지만 피터 그레이(<세친구>), 베니또 스트란지오 등 실력있는 외국인들이 각각 미국과 한국의 촬영감독을 맡아 독특한 디지털 영화의 질감에 대한 기대를 높이고 있다. “내러티브 보다는 여자의 심리, 내면의 갈등을 중시한 캐릭터 영화에요. 그래서 캐릭터에 따라 화면 느낌도 달라요. 가인이 나오는 미국 분량은 거의 고정카메라로 가며 아주 정적이며 폐쇄적이며 황량한 분위기에요. 색이라면 블루톤 도희가 헤매는 서울거리는 들고찍기로, 도희의 움직임을 끊임없이 쫓아가는 느낌이에요. 빛바랜 오래된 사진의 색감이죠.” 최윤선씨는 미국 촬영 전에 한달 가까이 감독과 함께 생활하며 ‘가인’이 되어갔다. 촬영현장에서 만난 도희역의 이선진씨는 슈퍼모델 출신의 화려한 이미지와 달리 화장 안 한 맨얼굴이 세상에서 한발짝 물러난 듯한 인물같다. 분량이 많진 않지만, 정찬씨는 시나리오를 보고 노 개런티 출연을 자청했다. 한국영화가 ‘여성 몸의 욕망’과 제대로 맞서본 기억은 많지 않다. <그 집 앞>은 나직하면서도 도발적인 영화가 될 것 같았다. 제작진은 보충촬영이 끝나는대로 투자자를 모집해 후반작업을 마무리할 예정이다. 김영희 기자 dor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