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리 포터와 비밀의 방>과 <반지의 제왕: 두개의 탑>이 2002년 최후의 격돌을 눈앞에 놓고 있다, 고 이야기된다. 사람들은 자못 흥분한다. 그 사이에 007 시리즈 <007 어나더데이>가 있다. 007까지 포함하여 세편의 메이드 인 할리우드 블록버스터가 전세계에서 흥행을 위해 불뿜는 경쟁을 벌인다, 고 이야기된다. 사람들은 흥미진진함을 느낀다.
그러나 적어도 O.S.T의 차원에서 이야기하자면, 이 경쟁은 일종의 허수의 싸움일 수도 있다. 세편의 O.S.T가 모두 워너에서 나왔다. 이래놓고 보면 경쟁이라는 건 괜히 붙여지는 것이기도 하다. 흥행은 그런 식으로 이루어지고 사람들은 그 허수의 상승작용을 알면서도 받아들인다. 이걸 꼭 할리우드의 흥행방식이라고만 할 수 없다. 마케팅의 고전적인 수법의 하나이기도 하니까. 그렇기는 해도 이런 거대한 자본이 투입되는 블록버스터들이 다른 나라 같으면 일년에 한편이 나올까 말까한데 할리우드는 한 시즌에 몇개씩 나온다. 물론 워너는 배급사이고 음반을 기획한 회사는 다 다르다. 우리가 주목할 음반인 <Harry Potter and the chamber of secret>는 ‘넌서치’(Nonesuch) 레이블에서 나왔다. 넌서치는 크로노스 4중주단이나 필립 글래스 같은 대중적 감각으로 다시 포장하는 일이 가능한 음반들에 강점을 보이던 레이블인데, 이제 영화음악에까지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특히 필립 글래스는 그의 ‘영화음악 모음집’을 넌서치에서 내놓고 있으니 그 두 영역을 다시 접붙이는 일을 넌서치가 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해리 포터…>의 음악은 다시 존 윌리엄스가 맡았다. 다시 그렇다. 첫편에서와 마찬가지로. 첫편에 관한 글을 쓰면서 ‘정답’이라는 말을 했었는데, 이번에도 역시 ‘정답’이다. O.S.T를 들어보면 음악들이 트랙은 나누어져 있으되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O.S.T만을 따로 들을 경우 지난번과 비슷하게, 19세기 어느 후기 낭만파 작곡가가 지은 긴 랩소디를 듣는 듯한 느낌이다. 분위기에 따라 즐거워지기도 하고 어두워지기도 하며 등잔불을 켜고 암중모색을 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존 윌리엄스처럼 관록이 있는 영화음악가들은 그 안에 하나의 포인트를 준다. 포인트는 역시 ‘신비감’이다. 그냥 무심한 듯 흐르기는 하지만 전체적인 느낌 속에는 신비스러운 세계를 막 접한 순진한 눈동자의 깜박임 같은 걸 감지하게 해주는 면이 있다. 이런 ‘즉물감’을 대규모 오케스트라를 동원하여 표현하는 일은 쉬운 게 아니다. 존 윌리엄스 같은 사람이니까 손쉽게 하는 것 같아 보이는 거지.
음반은 그냥 클래식 음악 음반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다. 신시사이저 소리는 완전히 배제되었다. 전통적인 오케스트라에서 사용하는 서양 악기들만이 동원되었다. 요새 정통 클래식 음반 시장은, 특히 미국 시장의 경우 완전히 파산할 지경이 되었다는 이야기들을 한다. 시장 자체가 없어졌다는 말들을 하기도 한다. 대부분이 20세기에 나온 명반들을 디지털화하여 복각하는 것이고 새로 녹음되는 음반은 더욱 드물다. 특히 클래식 음악처럼 녹음하고 뭐하고 하는 데 돈이 많이 드는 장르는 극소수 마니아들만을 가지고 장사해먹기가 힘든 것이다. 그런 사정을 감안하면 이 정도 정통적인 매무새의 클래식적인 음악을 그나마 감상하게 해주는 매체가 바로 영화라는 생각도 든다. 19세기 낭만주의 음악의 영혼은 지금 영화라는 둥지에 깃들어 있다. 성기완/ 대중음악평론가 creole@hite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