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트워크 구석에 작게 켜진 불꽃이 어느새 수십만의 촛불이 되어 방방곡곡으로 퍼져나가고 있다. 올려다보기도 버겁게 커져버린 주류 미디어 어느 곳도 하지 못한 일을, 민들레 홀씨처럼 작은 사람들의 입과 입이 해낸 것이다. 그리고 이제 우리의 눈을 씻어줄 신선한 만화들도 이름 높은 만화잡지와 스포츠신문에서 찾지 않는다. 그보다는 네트워크를 따라 흐르는 따뜻한 칭찬의 말에 귀기울이는 것이 좋다. 오늘도 우리에게 귀찮이즘을 전하느라 스스로 귀찮이즘을 포기하는 게 아닐까 걱정스러운 스노우 캣(snowcat.co.kr)과 효순-미선이에게 가장 따뜻한 헌시를 보낸 강풀닷컴(kangfull.com)은 이미 ‘모르면 007’이 될 정도의 이름을 얻고 있다. 그 리스트에 하나 더. 왜 이제서야 찾아냈을까 두근거리는 마음을 억누를 수 없는 성게군과 친구들의 따뜻한 일기 마린 블루스(marineblues.net)를 추가하고 싶다.
바닷가 소년의 서울생활 25시
마린 블루스는 바닷가에서 자라난 정철연이라는 친구가 지난 여름 서울로 상경한 뒤 직장생활을 하며 겪은 소소한 이야기들을 올려놓은 만화 일기장이다. 스스로 성게군이라는 이름의 캐릭터로 둔갑하고, 주변 친구들과 동료들도 쭈꾸미군, 불가사리군 등으로 등장시켜 누구나 겪을 만한 시시껄렁한 이야기들을 맛난 양념으로 버무려 내놓는다. 이제 그의 방문객들은 딸깍딸깍 하는 클릭만으로도 이 친구가 언제 여자친구와 헤어졌고, 언제 일본 출장을 갔고, 비가 오는 지금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어쩌면 이렇게 자기 이야기를 솔직하게 뱉어낼 수 있을까 아무리 귀여운 해물의 가면을 썼다고 하더라도, 익명의 존재들이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들여다본다는 부담은 결코 적지 않을 텐데. 물론 지금도 네트워크 곳곳에는 유명세를 노린 노출광들의 핍쇼가 펼쳐지고 있다. 하지만 자기 방 곳곳에 라이브 캠을 설치해놓는 이들의 자기 과시욕과 성게군의 솔직한 고백의 마음은 전혀 다른 종류의 것이다. 성게군은 낯선 모든 이를 자신의 친구로 보면서, 그 친구들이 성게군의 생활과 고민을 진짜 친구의 마음으로 바라봐 주기를 바란다.
성게군의 매일을 들여다보는 가장 친한 친구들은 아마도 그와 비슷한 생활을 하고 있는 또래들일 것이다. 20대 초중반, 직장생활을 갓 시작했거나 시작하고파 하는 때. 연애의 즐거움을 가장 잘 알고 그래서 혼자 있는 외로움이 더욱 서글픈 순간들. 디지털카메라, DVD, 해외여행…. 갖고 싶은 것도, 하고 싶은 것도 많지만 비어만 가는 주머니에 괴로워하고 매달 날아오는 신용카드 사용 명세서가 두렵기만 한 나날들. 성게군과 친구들의 이야기는 바로 지금 자신의 이야기로 여겨진다. 회사 업무 시간에 선배를 따라 라면 하나 후루룩 먹는 땡땡이의 즐거움, 협력업체와 MT를 가게 되었는데 “또 MT냐” “일 좀 하자”면서도 입은 벌어져 있는 사람들의 모습은 또래의 직장인들도 키득거리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아니메 스타일 벗어 더욱 좋다
그러나 단지 솔직 담백의 공감대만을 가지고 이 만화에 빠져들지는 않을 것이다. 네트워크 곳곳에는 비슷한 종류의 일기장들이 피어나고 있으며, 그 내용의 재기발랄함 혹은 과격함으로는 마린 블루스 못지않은 것들도 많이 있다. 마린 블루스의 더 큰 매력은 이미 아마추어의 수준을 훌쩍 벗어던진 캐릭터 감각과 달콤한 색상, 그리고 담백하면서도 템포를 정확히 맞추어가는 만화적 밀도이다. 주인공 성게군과 그의 곁에서 외로움을 달래주는 선인장양, 낯뜨거워 볼 수 없는 연애 커플인 쭈꾸미군과 쭈꾸미양은 그 자체로 사랑스러운 외모를 가진 캐릭터이면서도 각각의 분명한 성격이 만화를 통해 계속 샘솟아나는 존재들이다. 비슷한 연령대의 감각파들이 가진 지나치게 마니아적인 편향이나 이른바 ‘아니메’ 스타일의 고정화된 캐릭터형에서도 벗어나 있어 더욱 그 신선함이 크다.
많은 캐릭터들이 우수한 외모를 가지고도 대중의 사랑을 받는 데 실패하는 이유는 그 안에 잠재된 개성의 생명력이 발휘되지 않기 때문이다. 마린 블루스는 인간을 해물화시키고, 또 추상적 존재를 의인화시키는 역전의 방법으로 따뜻한 만화적 공동체를 만들어낸다. 만화 언어에 익숙하고, 또 그들 세대의 문화적 공감대를 더 잘 이해할수록 빠져드는 만화다. 다소 냉혹한 성격이지만 그래서 더 실감나는 불가사리군은 단호할 때 갑자기 사실체로 바뀌어지는데, 그 위화감이 자칫 두루뭉술할 수 있는 착한 만화에 후춧가루를 뿌려준다(그를 보면 능글맞은 얼굴의 <극락 사과군>이 생각난다). 절대 가까이 하고 싶지 않지만 그래도 왠지 사랑할 수밖에 없을 것 같은 감기군, 한강에 가서 물에 빠뜨리려고 하는데 “이렇게 깊은데”라며 주저하는 고민군을 보면, 아무리 자기를 괴롭히는 존재라도 어차피 곁에 있을 텐데 친구처럼 생각하면 어떠냐는 체념의 철학이 느껴지기도 한다. 필요할 때만 찾다가 버림받는 모기향과 초에 마음을 주고, 길에서 차에 밟혀 죽은 쥐를 보며 사연을 만들어주는 모습에는 왠지 소녀 취향의 감상이 묻어나지만 그래도 담백함을 잃지 않는 게 좋다. 생각해보면 그러한 ‘감상’의 의도가 분명한 만화들도 우리 주변에 적지 않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마음을 조작하려는 만화와 마음을 움직이는 만화는 다르다고 생각한다.이명석/프로젝트 사탕발림 운영 중 www.sugarpra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