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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베르트 로드리게즈 감독의 <스파이 키드>
2002-12-24

엄마 아빠를 구하자,얍!

Spy Kids, 2000년감독 로베르트 로드리게즈출연 안토니오 반데라스 KBS2 12월25일(수) 오전 10시40분

이제는 크리스마스 풍경도 많이 바뀌었다. 어릴 적 크리스마스 시즌에 공중파 TV로 영화를 보는 재미는 솔솔했다. 캐롤 리드 감독의 <올리버>나 로버트 와이즈의 <사운드 오브 뮤직> 같은 영화를 보는 건 한해의 이벤트 같은 것이었다. 영화에 나오는 주제가를 함께 흥얼거리는 것 역시 특별한 기분이 들도록 했다. 올해 크리스마스엔 <나홀로 집에>와 <머팻> 시리즈, 그리고 <스튜어트 리틀> 등의 영화가 방영되어 어린이들을 즐겁게 할 예정이다. 나쁘진 않겠지. 그럼에도 뮤지컬이나 고전적인 가족드라마가 누락된 것은 어쩐지 서운한 감이 없지 않다.

<스파이 키드>는 깜찍한 어린이들이 나오는 영화다. 카르멘과 주니는 중산층 가정의 아이들이다. 아버지, 어머니인 그렉과 잉그릿은 소문난 잉꼬부부이며 자녀에게도 자상하다. 아버지인 그렉이 친구들 앞에서 주니를 만족시키지 못한다는 점을 제외하면 평화로운 가족이다. 그런데 이들 부부는 전직 스파이였다. 상부에선 부부 스파이가 일선으로 복귀하게끔 명령을 내린다. 플룹 일당이 로봇인간 만드는 것을 저지하기 위함이다. 부모가 위기에 처하자 아이들까지 싸움에 가세하게 된다.

영화는 어린이 관객의 눈높이에 철저하게 봉사한다. 어린 시절 ‘내 공부방에 혹시 비밀통로가 있어 지구 반대편과 연결되어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공상을 품었던 적이 있다면, 영화 보는 재미에 기꺼이 동참할 수 있다. <스파이 키드>는 스파이영화의 볼거리를 갖추고 있다. 007 시리즈에서 만날 수 있었던 첨단무기가 등장하는 것이다. 껌이 상대를 기절시키는 무기가 되고 순간접착제, 알약 햄버거, 미니 카메라 등 다양한 소품도 진기하다. 아이디어로 승부하는 영화인 셈. 여기에 영화는 SF와 가족드라마의 줄기를 덧붙인다. 부모의 신분을 알게 된 뒤 카르멘과 주니는 먼 여행을 떠난다. 위기에 처한 부모를 구하고 지구를 지키기 위해서다. 스파이영화의 관습을 따르면서도 아이의 성장담을 섞는 방식으로 <스파이 키드>는 어린 관객의 공감을 얻어내려고 분투한다.

<스파이 키드>는 로베르트 로드리게즈 감독작이다. 그는 <엘 마리아치>(1992)라는 저예산영화 한편으로 미국 인디 영화계의 스타가 되었다. 눈부신 속도감, 기존의 액션영화를 새롭게 업그레이드하는 기법을 선보인 로드리게즈 감독은 이후 할리우드 주류에 발빠르게 편입했다. <데스페라도>와 <황혼에서 새벽까지> 등으로 로드리게즈는 가장 ‘상업적인’ 감독으로 출세를 거듭했고 여기 반비례해 그의 초기영화에서 신선함을 발견했던 영화광들을 실망시켰다. <스파이 키드>에서 그나마 감독의 문제의식이 엿보이는 것이라면 영화 속 악당이 TV스타라는 정도가 아닐까. 이것도 너무나 호의적인 해석일지 모르겠지만….김의찬/ 영화평론가 garota@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