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프랑스 영화의 동향을 살펴보면 한국과 비슷한 점이 하나 발견된다. 즉 자국 영화 시장 점유율이 2001년과 마찬가지로 40%를 상회하고 극장 관객도 증가함으로써 외부적으로는 아무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내부적으로는 영화 제작 자본을 둘러싸고 심각한 문제들이 지적된다는 것이다. 지난 4월부터 시작된 카날 플뤼스의 위기로 방송 자본이 급격하게 영화 제작에서 빠져나갈 조짐을 보이자, 프랑스 제작자들은 적극적인 문제 해결을 CNC(프랑스의 영화진흥위원회)에 요구해 왔다. 이에 CNC는 지난 9월 말 잠정적인 몇 가지 방안을 발표하였는데, 그 가운데 요즘 CNC와 영화 제작자간에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는 것이 지방 정부 단체들의 기금 조달이다.
현재도 26개 프랑스 지방 가운데 14개 지역이 장편 영화 제작을 지원하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지원 금액이 미미하고 지원 방식도 불안정하다는 것이다. 일례로, 2001년 영화 제작에 투자된 총 지역 기금은 600만 유로(한화로 약 72억원) 정도인데, 이 가운데 400만 유로 이상이 단지 두 지방에서만 출자됐다. 또한 지원 방식도 적극적인 투자보다는 소극적인 촬영 지원이 훨씬 더 많다. 하지만 이러한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지역 투자가 독립 영화 제작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에 모두가 동의하고 있기 때문에, CNC는 이 기금을 현재 600만 유로에서 1500만 유로까지 올릴 가능성을 검토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적극적으로 프랑스가 참조하고 있는 모델은 독일이다. 독일은 거의 모든 지방에 방송, 영화, 멀티 미디어 등 영상 산업을 지원하는 지역 기구를 갖고 있다. 이 기구들은 그 지역의 공공 기금으로 방송물이나 영화에 투자하고 그 대신 제작사들은 지원받은 지역에서 반드시 촬영이나 후반 작업을 해야 한다. 이러한 기구의 효시는 1991년 뒤셀도르프에 설치된 영화 재단 (Film Foundation)인데, 뒤셀도르프가 속해 있는 라인란트 지방은 80년대 후반 방송과 영화 촬영을 위한 대규모 스튜디오와 커뮤니케이션 센터를 마련해 적극적으로 영상 산업을 유치함으로써 경제 위기를 극복하였다. 이를 본따 다른 지방에도 영상 투자를 전담하는 기구들이 설치되는데, 1994년 베를린의 필름보드(FilmBoard), 1996년 뮌헨의 FFF(FilmFernsehFonds) 등이 대표적이다. 특히 FFF는 1996년에서 2001년까지 제작. 배급, 상영에 1억4천만 유로 이상을 투자하였고, 이 기간 동안 독일 국내에서 가장 많은 수익을 거둔 영화들의 3분의 2가 FFF의 지원을 받았다.
독일의 지역 기금은 현재 독일 국내 영화 제작에서 가장 중요한 투자처가 되었고, 중요한 감독뿐 아니라 알려지지 않은 감독의 영화나 혁신적인 영화에도 투자함으로써 독일 영화가 다양성을 기하는 데도 많은 기여를 하였다. 하지만 이런 방식이 갖고 있는 문제점도 있다. 가령 정부 차원에서 추진되는 영화 개혁이 이들 기구의 압력으로 무산되는 경우라든가 지원받은 지역에서의 의무적인 촬영 조건 때문에 제작비가 상승되는 경우가 그렇다. 아무튼 적극적으로 지방 분권을 추진하고 있는 프랑스에서는 독일의 지역 기금 시스템이 이중으로 매력적이다. 지방의 발전에 기여한다는 면과 영화 제작의 안정적인 투자처를 마련할 수 있다는 점에서. 비슷한 상황에 처해 있는 한국에서도 이러한 시스템을 고려해볼 만하지 않을까.
파리/박지회·파리 3대학 영화학 박사과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