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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서 벌어지는 아시아판 세븐 <더블비전>
2002-12-24

대만 타이페이에서 괴이한 살인사건이 잇따른다. 몹시도 무더운 날, 자신의 사무실 안에서 숨진 대기업회장의 시신은 마치 얼음물에 빠져 죽은 듯하다. 멀쩡한 아파트에선 한 여인이 고온의 불 앞에서나 가능한 전신 탈수증으로 발견된다. 저명한 외국인 목사는 자신의 교회 침대에서 창자가 다 빠졌다가 다시 꿰매진 채 숨져 있다.

대만 첸 쿠오푸 감독의 서스펜스 스릴러 <더블비전>은 쉽게 말하면 ‘아시아판 <세븐>’이다. 여기서 단테의 <신곡>을 대신하는 것은 도교의 한 종파의 성서다. 혹한의 지옥, 혀를 빼는 지옥, 창자를 빼는 지옥 등 5단계를 거치면 6번째 불멸을 얻는다는 성서를 믿는 사교집단과 또 다른 인물이 등장한다.

하지만 영화가 보다 섬세하게 보여주는 것은 초자연적인 현상의 사건 한복판에서 절대공포와 맞부딪친 사람들의 심리다. 황후오투(량자후이·양가휘) 형사는 3년 전 친척인 동료경관의 비리를 폭로한 뒤 상처와 자괴감에 빠져 있는 인물이다. 그와 짝이된, 미국 연방수사국에서 파견되어 온 연쇄살인 전문수사관 리히터(데이빗 모스)는 신이 없다고 믿지만, 사건의 끝(끝이 아니었다)에선 지독한 혼란을 느낀다.

느리지만 힘있게 파고드는 연출, 첫 장면의 충격적 이미지와 도교사원에서의 잔인한 싸움 등 하드고어적 분위기는 이 영화의 매력이다. 량자후이의 연기도 빼어나다. 하지만 영화에서 나오는 ‘지옥’은 분위기를 위한 것일 뿐 <세븐>처럼 인간의 본성에 대한 끈덕진 탐색은 없다. 귀신도 인간도 아닌 ‘반인’을 볼 수 있다는 동공이 두 개씩 있는(‘더블 비전’) 인간에게서도 별 존재감은 느껴지지 않는다. 27일 개봉.

김영희 기자 dor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