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헌을 만나러 홍익대 앞 M&F(Music & Film Creation)를 들어서면서 가만히 횟수를 세워보았다. 조성우 음악감독 (<해적, 디스코왕 되다>), 김준석 음악감독(<결혼은, 미친 짓이다>), 김상헌 음악감독(<연애소설>)에 이어 이번 박기헌 음악감독까지 꼭 네명째, 방문 횟수로는 그보다 많이 M&F 문지방을 밟는 거였다. 그만큼 M&F와 <씨네21> 사이에 무슨 커넥션이 있는 거 아니냐고 의심하지 마시라. 인디 레이블의 형식을 띠며 출발한 M&F가 한국 영화음악 시장의 미래를 책임지겠다고 한 말을 현재 실천 중이라는 의미니까. 영화음악계의 대부 조성우는 평생 동안 단 한명의 제자만을 길러내는 <취권>이나 <당산비권>의 사부 과(科)는 아니었나보다. 그는 마치 과업을 수행하듯, 혹은 즐기듯 자신의 품 속 후배들을 적절한 수행 결과물과 광휘를 둘러 자신의 작품을 발표하듯 꺼내놓고 있다.
박기헌의 문파(門派)를 굳이 따지자면 소림오조와 관계없는 애정(愛情)신파(辛派)의 사제가 아닐까. 그도 그럴 것이 멜로영화 하면 일단 조성우 맹주를 떠올린다는 사실말고도 최근 M&F에서 흘러나온 <해적, 디스코왕 되다> <결혼은, 미친 짓이다> <연애소설> <죽어도 좋아>까지 모두 사랑 얘기를 다룬, 일종의 멜로드라마들이 아닌가. 그중 박기헌의 입봉작인 <죽어도 좋아>는 다큐멘터리 형식을 띤 극영화라는 점과 시점이 균일하지 않다는 점, 노인의 성을 솔직하게 표현했다는 점에서도 흥미롭지만, 음악적으로도 매우 특이한 영화다. 경기민요 중 하나인 <청춘가>가 비디제시스적 음악(작품 내적인 음악)으로 무시로 등장하는 가운데, 엔딩곡으로는 랩음악 <Too young to die>가 채택된 가운데(이것은 순전히 박진표 감독의 의도지만), 작품 전반을 아우르는, 씩씩한 금관악기 트럼펫과 점잖은 금관 클라리넷, 무겁지 않은 나일론 기타 그리고 무성(無性)의 아코디언이 어우러진 라틴음악까지 다양한 색깔의 음악들이 알콩달콩 동거하는 영화인 셈. 박기헌은 이 모든 것의 조화를 가능케 하는 것이, ‘웃음’ 다시 말해 영화 전체에 흐르는 ‘해학’때문이란다. 아무런 악의없이 웃음을 자아내게 하는 영화 속 곳곳의 장면들이 조금은 울퉁불퉁한 음악의 비포장 도로를 매끈하게 느끼게 하는 것이라고.
지난 전주영화제에서 처음 관객을 맞이했을 때보다 극장 개봉을 앞두고 열린 지난주 일반 시사 땐 웃는 횟수가 훨씬 더 늘었다는 사실은(점점 늘어나고 있단다), 이 영화의 웃음 포인트가 감독이 의도한 것보다 훨씬 많다는 걸 말한다고 그는 힘주어 말한다. 마지막으로 그가 전하는 영화 즐기기 팁. 남보다 많이 웃고, 눈가의 눈물을 부지런히 훔칠 것, 그리고 마지막 자막 올라갈 때 끝까지 자리에 앉아 MK. Shin의 랩을 다 듣고 갈 것. 그는 현재 영상원 학생들의 단편작업을 돕고 있으며, 잘 만들어진 로맨틱코미디로 다시 인사드리고 싶단다. 글 심지현 simssisi@dreamx.net·사진 오계옥 klara@hani.co.kr
프로필
→ 충북대 철학과 졸업→ <용가리2000>으로 M&F 합류→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 음악 스탭→ <선물> 음악 조감독→ <세이예스> <해적, 디스코왕 되다> 음악 부문 참여→ <죽어도 좋아>로 음악감독 데뷔→ 현재 단편작업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