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자는 애니메이션 제작을 ‘버티기’라고 말한다. 아무리 힘들어도, 빛이 안 보여도, 버틸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제작되지 못하고 사장되는 프로젝트가 더 많은 게 현실이고 보면, 확실히 버티기는 중요한 것 같다. 물론 현실적인 계산과 노력 없이 마냥 버티기만 해서도 곤란하지만 말이다. 레인버스 스튜디오(www.rainbus.com)의 3D애니메이션 <투모야 아일랜드>는 인내심과 추진력으로 마침내 빛을 보는 경우다.
오는 12월25일 오후 3시, EBS에서 22분 분량의 특집으로 방영되는 이 작품은 원래 5분 52부작으로 기획된 시리즈다. 캐나다의 사운드벤처프로덕션사와 공동으로 제작될 예정으로, 커뮤니티 포털사이트 싸이월드(www.cyworld.com) 등에서 아바타로 더 많이 알려졌다. 본 시리즈는 한국의 EBS, 캐나다의 TV Ontario, TFO, Access TV에서 2003년 하반기부터 방영될 계획이라고 한다. 20여분가량의 데모 영상은 이미 나온 상태.
작품의 배경은 환상의 섬인 ‘투모야 아일랜드’. 이곳 투모야 아일랜드에는 다양한 성격을 지닌 일곱명의 친구들이 살고 있다. 모두 공룡인 듯, 아닌 듯한 동물이다. 사건의 발단은 친구들을 괴롭히는 개구쟁이 마피에게서 비롯된다. 우주에서 온 외계인 이쿠족은 투모야의 생명의 원천인 수정구슬을 훔치려고 기회를 엿보다가, 마피를 이용해 수정구슬을 훔치는 데 성공한다. 투모야 아일랜드는 점차 생명력을 잃고 친구들의 수정구슬을 되찾으려고 이쿠족과 대결을 벌인다. 그러던 중, 수정 구슬이 반으로 깨져버리고, 이쿠족과 투모야 친구들은 모두 절망에 빠진다. 악당으로만 여겼던 이쿠족에게는 그러나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는데….
미취학 아동을 대상으로 하고 있음에도 궁극적으로는 선악 대결이 아니라 입장의 차이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투모야 아일랜드>는 신선하다. 이번에 방영하는 크리스마스 특집은 크리스마스에 눈이 왜 안 올까에 대해 고민하는 투모야 친구들의 해프닝을 그린다.
3D스튜디오 레인버스스튜디오는 공대와 미대 출신 애니메이터가 조화를 이루고 있다. 2001년에 설립된 이 신생 회사는 하늘에 별 따기보다 어렵다는 TV 방영 계약이 이뤄지기까지, 일단은 부수적인 캐릭터 알리기에 나서는 전법을 썼다. 그래서 아바타는 물론 게임, 인터넷 메일 스킨, 모바일 콘텐츠 등을 먼저 시장에 내보냈는데, 일단은 성공한 셈이다.
여기에 레인버스스튜디오의 야심이 하나 더 있다. 3D 제작비는 비싸다는 통념을 깨자는 것이다. 캐릭터들이 모두 뒤뚱거리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그러나 제작비를 줄이느라 관절을 많이 만들지 못해 뒤뚱거리는 게 오히려 의도된 연출인 셈이라고 제작진은 말한다. 애초부터 이런 걸음걸이가 어울리는 캐릭터로 디자인했다는 것이다.
류재형 사장은 “<피터팬>을 보면서 하늘을 나는 피터팬이 되고 싶었던 것처럼, 투모야 섬 친구들은 바로 아이들이 되고 싶어하는 캐릭터로 만들고 싶다”고 말한다.
판타지 동화 <투모야 아일랜드>에는 자연을 사랑하는 고전적인 캐릭터뿐 아니라 메카도 등장한다. 과학자를 꿈꾸고, 빨리 어른이 되고 싶어하고, 하늘을 나는 벌과 이야기하고 싶어하는 캐릭터들은 사람과 닮지 않았지만 역시 우리와 친숙하다. 우리가 사는 세상과는 완전히 다르게 디자인된 투모야 아일랜드의 구성도 재미있다(택시가 곤충 모양이다).
밝은 색감과 귀여운 움직임이 돋보이는 이 애니메이션의 승부는 5분이라는 짧은 시간에 얼마나 효율적인 연출을 담아내느냐에 달렸다. 스토리를 담기에도 부족하고, 영상만 보여주기에도 아쉬운 5분의 활용. 결코 쉽지 않은 숙제다. 이번 크리스마스에 방영되는 특집에서 레인버스스튜디오의 연출력을 일단 먼저 엿볼 수 있을 것이다. 김일림/ 월간 <뉴타입> 기자 illim@kore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