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교복치마와 종아리를 덮는 헐렁한 양말(루즈 삭스), 검게 선탠한 얼굴과 굽높은 신발. ‘고갸르’라는 신조어로 일컬어지는 일본 여고생들의 특징이다. 명품 가방을 사기 위해 거리낌없이 원조교제를 한다는 고갸르는 일본문화를 읽는 하나의 코드다.
<가미가제 택시>, <주바쿠> 등을 만든 하라다 마사토 감독의 <바운스>는 고갸르들의 24시간을 담은 영화다. 기차를 타고 시부야에 내린 리사는 10대 여학생들이 입던 속옷과 교복 등을 파는 가게에 들어간다. 오래전부터 준비한 뉴욕행 가출을 하루 앞두고 돈을 벌기 위해서다. 리사는 가게에서 비디오 모델 아르바이트를 소개받는다. 짧은 교복을 입은 채 카메라 앞에 서는 촬영을 하다가 그는 1년동안 편의점에서 일하며 모았던 돈을 뜯긴다. 빈털털이가 된 상태에서 비행기 출발까지 남은 시간은 12시간 남짓. 리사와 친구들은 하룻밤에 떼돈벌기 원조교제 리스트를 작성한다.
“원조교제의 미학은 잠을 자지 않고 떼돈을 버는 거지.” 당돌하게 말하는 영악한 고갸르들을 보여주지만 영화는 이들을 향해 근심어린 한숨을 내쉬지 않는다. 병든 건 “남자 친구랑 섹스하는 것과 아저씨들과 돈받고 섹스하는 것과 뭐가 달라요”라고 묻는 이들의 질문에 대답하지 못하는 일본의 기성세대다. 고갸르를 앉혀놓고 일본사회의 화합을 웅변하는 관료나 2차대전 당시 자신이 관여했던 위안소를 찬양하는 전범. 가라오케에서 고갸르와 손잡고 인터내셔널가를 부르는 야쿠자 등 <바운스>는 고갸르가 아닌 고갸르 수요자들을 통해 일그러진 일본의 현실을 드러낸다.
반면 리사의 여행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함께 ‘사기’원조교제를 뛰는 존코와 라쿠, 세명의 십대는 발랄하고 아름답게 그려진다. 전기충격기를 이용해 섹스를 피하고 돈을 뜯는 이들은 딸같은 아이들을 욕망하는 중년의 일본 남성들을 바보로 만든다. 상대방을 때려눕히고 도망치며 깔깔거리는 아이들을 잡는 카메라는 찌들고 이기적인 어른들의 세계와 반대되는 10대들의 순결한 속살을 보여준다. 특히 다음날 아침 비행기를 타러 떠나는 리사와 존코, 라쿠가 지하철역에서 헤어지는 마지막 장면은 코끝 시큰해지는 감동을 전한다. 6일 개봉.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