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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씨,<바람이 우리를....> 키아로스타미와 조우하다
2002-11-28

박하차 같은 첫 만남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영화를 처음 보았다는 고백은 자신이 왕초보 무비고어(moviegoer)라는 자백일 터이다. 최인훈이나 황석영의 소설을 처음 읽었다는 고백이 자신이 왕초보 독서인이라는 자백이듯.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주리라>를 봤다. 이 소문난 이란 시네아스트와의 첫 대면이었다. 황홀경의 기대로 너무 들뜬 채 영화관엘 들어간 탓인지, 그만그만하다는 소감으로 차분해진 채 나왔다. 물론, 반반한 영화 한편을 내 시네마 천국에 새로 등록했다는 속물적 만족감은 있었다.

화면은 달디단 박하차 같았다. 나는 박하차를 파리의 한 터키 식당에서 몇 차례 얻어 마셔본 적이 있다. 터키와 이란은 아랍 국가가 아니면서도 이슬람 문명권의 중요한 역사적 주체였다는 공통점이 있다.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주리라>의 배경인 시어 다레 마을은 쿠르드족 거주지라니, 아마 터키 국경 언저리에 있을 터이다. 시어 다레는 ‘검은 계곡’을 뜻한다고 한다. 그러나 스크린에 오른 이 마을 풍경이 내 뇌리에 박아놓은 빛깔 이미지는 하양이었다. 청명한 햇빛 속에서 집들은 온통 하얬다. 마치 석회로 빚은 듯. 사실 하양은 이 영화를 보기 전부터 내게 이슬람의 이미지였다. 이슬람 세계에 가본 적은 없다. 그러나 10여 년 전 이슬람의 자취가 남아 있는 스페인 남부 지방을 버스로 여행했을 때, 내 상상력 속에서 하양은 이슬람의 빛깔이 되었다. 그라나다나 코르도바 같은 도시들의 구시가들이 온통 하얬기 때문이다. 테헤란에서 450마일쯤 떨어져 있다는 영화 속 시어 다레에 그 이름이 뜻하는 검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우선 새하얀 햇빛 아래 만물의 그림자가 까맣고, 마을 사람들이 입고 있는 옷들도 대개 검다. 집들의 하양은 옷들과 그림자들의 검정에 졸여지며 박하차의 달디단 맛을 우려내고 있었다. 그 점에서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주리라>는 흑백영화였다.

시어 다레는 온통 비탈이었다. 그 비탈길들이 만들어내는 스테레오 공간은 미로의 세계였다. 현무도(玄武圖) 속의 뱀처럼 엉켜 있는 골목들과 앞뒷집을 잇는 사다리가 그 마을의 네트워크였다. 그러나 그 네트워크는 인트라넷일 뿐이다. 장례 풍습을 취재하러 시어 다레로 들어간 테헤란 저널리스트 베흐저드의 휴대폰은 그 마을에서 가장 높다란 곳, 묘지에서만 제 구실을 할 수 있었다. 동네 사람들은 서로 용건이 있으면 올려다보거나 내려다보며 말을 건넸다. 앞마당이나 뒤뜰까지도 비탈이었다. 이 비탈의 세계에서 둥그런 것은 죄다 굴렀다. 사과든 공이든 돌멩이든. 위치에너지를 운동에너지로 번역하며. 그것은 동화 속 공간이거나 놀이동산이었다.

대사는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주리라>에 담긴 소리들의 일부분일 뿐이다. 그 소리들은 흔히 동물들의 울음소리다. 병아리들과 중닭들과 염소들과 양들과 개들의 웅성거림. 기계문명의 손아귀에서 벗어나 있는 시어 다레에서 이 소리들은 잠을 망치는 소음이 아니라 생명을 구가하는 복음이다. 거북이나 말똥구리 같은 미물들도 시어 다레 생명 공동체의 버젓한 멤버다. 쏟아지는 햇빛 속의 싱싱한 삶. 그러나 가난한 삶. 그 가난 속에서 사람들은 아무런 소란없이 아이를 쑥쑥 낳아 잘도 기른다. 그 삶은 이방인에게는 볼거리일지 모르나, 그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자존의 시공간이다. 자기 사진을 찍지 말라고 베흐저드를 나무라는 찻집 여주인의 위엄이 그 자존에서 나온다. 그녀는 베흐저드의 자동차나 카메라가 순금으로 돼 있을지라도 시어 다레에서는 아무도 그것을 훔쳐가지 않을 것이라는 단언으로 근심 많은 이방인을 멋쩍게 만든다. 그러나 이방인은 시어 다레 사람들의 심성에 끝내 동화하지 못한다. 베흐저드가 마을 소년 파흐저드와의 깨어진 우정을 끝내 회복하지 못하는 것도 그래서다.

영화 속에서 베흐저드를 비롯한 취재팀은 한 할머니의 죽음을 기다린다. 타인의 죽음을 기다리는 것은 더러 저널리스트의 운명이다. 윤리적으로 미묘한 상황이다. 영화 속 베흐저드의 처지는 내게 어떤 기억을 강요하며 낯을 화끈거리게 했다. 한 신문사의 파리 주재 기자로 일하던 8년쯤 전, 나는 교황 요한바오로 2세와 관련해 큰 오보를 낸 적이 있다. 그의 죽음이 임박했다는 기사였는데, 그게 그만 종교면 머리기사로 올랐다. 그 기사가 나가고 얼마 동안 나는 교황 성하께서 어서 선종하시기만을 빌었다. 성하께서는, 그때나 지금이나 기신없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살아 계시다.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주리라>는 느리고 낙천적인 삶을 찬송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런데 바람은 우리를 어디로 데려다줄까 결국 죽음이 아니라면 일상의 쾌락에 속도를 강요하는 죽음이 아니라면 중세 이란의 시인 우마르 하이얌의 연작 4행시 한 대목. 꼬끼오, 닭이 울자 주막 앞에서/ 사람들이 외치는 소리, “문을 열어라./ 우리들이 머물 시간은 짧디짧고/ 한번 떠나면 돌아오지 못하는 길//(…)// 오라, 와서 잔을 채워라, 봄의 열기 속에/ 회한의 겨울옷일랑 벗어 던져라/ 세월의 새는 멀리 날 수 없거늘/ 어느새 두 날개를 펴고 있구나.”고종석/ 자유기고가 aromachi@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