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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최고의 미국 인디영화 <도니 다코>
2002-11-28

<매그놀리아>+<E.T.>+<백 투 더 퓨처>

26살 작가-감독 리처드 켈리의 놀라운 장편 데뷔작 <도니 다코>는 작가 스스로가 침울하게 개입된 작품으로서, <엑스파일>류의 환상적 리얼리즘을 도입해, 그냥 뒀으면 흔하디 흔한 도시변두리 십대의 분노에 대한 그저 평범한 이야기가 되었을 법한 영화에 후끈한 자극과 활기를 심어넣었다.

일부는 만화 같고 또 일부는 케이스 스터디 같은 이 영화는 확실히 내가 올해 본 미국 인디영화 중 가장 오리지널하고 모험적인 작품이다.

켈리는 오프닝신에서부터 ‘정상성’을 도마에 올려 이리저리 갖고 놀기 시작한다. 배경은 88년 대선을 앞두고 논쟁이 한창이던 어느 날 저녁. 신경 날카로운 엄마와 거드름피우는 아빠, 느물거리는 십대 둘과 신경질나게 구는 꼬마여동생 등 시트콤에 나옴직한 구성의 한 가족이 식탁에 둘러앉아 배달시킨 피자를 한쪽씩 먹고 있다. “난 듀카키스쪽으로 찍을 거야.” 자녀들 중 맏이인 누나가 선언하자 아버지가 피자를 먹다 말고 사레가 들린다. 대선후보들의 정치경제관과 이에 따른 공약들을 두고 벌어지던 논쟁이 곧바로 낙태를 둘러싼 불경한 농담으로 이어지고, 대화가 진행되는 가운데, 남매들 중 중간인 도니(제이크 길렌할)가 정신상태가 불안정한 환자이며 약물치료 중임이 드러난다. 더구나 그는 외계로부터 메시지를 받고 있다고 한다.

세상이 28일 안에 종말을 맞을 것이라고 믿게 돼버린 도니는 이빨이 어마어마한 괴물토끼의 모습을 하고 있는 외계인 프랭크의 방문을 계속 경험한다.

그리고는 우리가 사는 우주 외에 또 다른 우주가 있다는 사인이 도처에서 나타난다. 불행한 뚱뚱이 소녀가 도니의 고등학교에 나타나 어슬렁거리면서 동상 머리에는 도끼가 꽂힌다. 엉뚱하게도 체육시간에는 ‘공포 매니지먼트’에 관한 비디오를 무심히 관람하게 되며, 비트족인 영어선생님(드루 배리모어)은 십대의 허무주의에 대한 편견을 드러낸 그레이엄 그린의 소설 <파괴자들>을 읽어오라는과제를 낸다. 혼자 미소짓고 우물거리며 다닐 뿐 별로 사교적이지 못한 도니는 새로운 소녀(제나 말론)를 알게 된다. 그 아이는 그림동화에 나오는 소녀인 양 이름이 그레첸이며, 그런 이런 이름에 잘 어울리는 괴상하고 으스스한 가족사를 가지고 있다. “넌 괴상해”, 그녀가 도니에게 일러준다. “그건 칭찬이야.” 그러는 동안 마을은 몇 가지 기괴한 사건들을 겪는다. 학교 메인펌프가 터지고 집이 불에 타버리는 것이다. 이런저런 일들을 겪으며 도니의 상태가 위축되자 의사들은 놀라 최면술요법을 시도한다(첫 번째 치료는 몽롱해진 환자가 가랑이 사이를 애무하기 시작하면서 급작스레 종료돼버린다).

광포하달만치 야심만만하고 또 마찬가지로 묵시적인 폴 토머스 앤더슨의 영화 <매그놀리아>로부터 켈리가 큰 영향을 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도니 다코>에는 80년대 팝컬처도 가득하다. 이 영화를 받쳐주는 철학은 대체로 <백 투 더 퓨처>에서 파생되었으며, 특히 에 관한 이상하고도 재밌는 암시가 깔려 있다. 그리고 이런저런 80년대 흔적 중에서도 가장 마음을 사로잡는 대목은, 텅 빈 극장에서 도니와 그레첸이 <이블 데드>를 보고 있는 신이다. 사운드트랙의 토니 바질도, 도니의 꼬마여동생과 댄스그룹 스파클 모션에 의해 매우 사랑스럽게 안무되어 재현된다.

지난 1월 선댄스에서 선보인 <도니 다코>는 상반된 평가를 얻었다. 에이미 토빈은 <빌리지보이스>에서 이를 영화제 최고의 작품으로 꼽았다. 다른 이들은 이 작품의 겉치레를 언짢아했으며 (스타들과 특수효과) 혹은 오만한 등록방식을 불평하기도 했다. 도니가 느꼈던 것 못잖게, 영화 자체에도 어색한 순간들이 있다. 켈리는 베스 그랜트를 완고한 뉴에이지 체육선생님으로 만드는 데 있어 너무 과했으며, 불길한 구름들이 하늘에 몰려오는 장면도 지나치게 많아 보인다. 하지만 이 작가-감독은 스스로의 내러티브에 대해 똑똑히 알고 있으며, 균형잡힌 자세를 취하고 있다. 그는 이를 무기로 <도니 다코>를 영화의 클라이맥스인 발푸르기스의 밤, 혹은, 영혼의 사육제를 향해 솜씨좋게 이끌어간다.

9월11일 그날 이후, 대부분의 영화들은 하찮은 소재들을 다루며 아귀가 안 맞고 논리라곤 없는 방향으로 이끌려가고 있는 추세다. 가슴을 벅차게 하는 <도니 다코>는 이런 경향과 대조적으로, 이상하리만치 위로를 주는 영화다. 비록 시대극이지만 켈리의 고등학교 시절 고딕은 오늘 이 순간에 완벽하게 들어맞는 것처럼 보인다. 이것은 꼭 9·11 사건이 아니더라도 그 어떠한 상황에서 나왔던 간에 정말 놀라운 데뷔작이다. 섬뜩한 진지함을 지닌 이 영화는 마침 2001 할로윈에 개봉되었다.짐 호버먼/ 영화평론가 <빌리지보이스>

* (<빌리지 보이스> 2001.10.30. 짐 호버먼은 미국 영화평단에서 대안영화의 옹호자로 가장 명망이 높은 평론가로 <빌리지 보이스>에 기고하고 있습니다. <씨네21>과 <빌리지 보이스>는 기사교류 관계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