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어느 날, 벼르고 별러 오랜만에 연출부, 제작부 스탭들과 외식을 하기로 했다(우리 회사 식구들은 입지 조건 때문에 끼니 때마다 가까이 있는 어느 대기업의 사원 식당에서 식판을 들고 줄을 서서 배식받는 밥을 먹기 때문에 외식은 나름대로 이벤트가 된다). 마침 ‘우리 쌀 지키기 전국농민대회’가 여의도 한강둔치에서 열리던 날이라 여의도 일대가 북새통이었다. 지하철역으로 가는 길은 한결같이 남루한 행색에 이런저런 구호를 새긴 머리띠까지 두른 농민들로 어수선했다. 날은 저물었고, 그들은 표정에는 추위에 지친 듯, 뭔가 낙담한 듯하면서도 서둘러 먼길을 또 가야 하는 조바심이 배어 있는 것 같았다. 막걸리라도 한잔 자셨는지 불콰한 촌로는, 길을 막고 있는 게 마음이 쓰였던지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머리를 조아리며 중얼거렸다. “우리도 살아볼라꼬 하는 짓인께 좀 이해하소….” 직원 두명이 음료수를 3만원어치 사서 삼삼오오 모여 있는 농민들께 전해 드리고 약속장소로 갔다. 지하철을 타고 가면서 나는 좀전에 만났던 농민들과 농촌을 무대로 한 ‘돈 버는 영화’ 궁리를 했고, 그날밤 우리는 회도 먹고 노래방에도 갔다.
이번주에는, 부산국제영화제가 한창이었지만 부산 근처에도 못 간 나는 홍기선 감독의 <선택> 촬영장에 다녀왔다. 촬영 시작했다는 소문을 듣고 ‘한번 가봐야지…’하고 마음은 먹고 있었지만 차일피일 미루고 있던 터였다. 일정을 알아보니, 아뿔싸! 그날이 마지막 촬영이라는 소리에 귤 한 박스를 사들고 선걸음에 달려갔다. 촬영장소는 용산구 후암동에 있는 옛 수도여고. 을씨년스런 날씨와 폐교의 스산함이 교실과 복도를 부분 개조한 감옥 세트와 어우러져 제법 그럴싸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마지막 촬영날이어서 그런지, 여전히 수줍음 많은 홍기선 감독과 주연 배우 김중기는 물론 스탭들 얼굴에는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표정은 밝아 보였다.
홍기선 감독을 처음 만난 것은 10년 전, <가슴에 돋는 칼로 슬픔을 자르고>를 만들었을 때 신촌 기차역 앞에 있던 영화사 영필름 사무실에서 어설픈 인터뷰를 하면서다. 그뒤 ‘가고파축구단’(아는 사람만 아는 ‘전설’의 영화인축구팀)에서 함께 축구도 했지만, 영화 일로 남다른 교분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나는 홍기선 감독 영화에 대해 경외감을 가지고 있다. <가슴에 돋는 칼로 슬픔을 자르고>에서 보여준 ‘비린내 나는 리얼리즘 정신’을 지지하고, <선택> 또한 홍기선 감독의 사람과 세상, 역사에 대한 올곧은 신념을 담아낼 것으로 믿기 때문이다. 홍기선 감독의 이런 신념이 더욱 정갈하게 보이는 것은, 수만명의 농민들이 그 추운 한강 바람을 맞으며 생존권 타령을 해야 하고, 미군이 장갑차로 사람을 치어 죽여도 우리나라 법정에 세울 수조차 없는 이 땅의 믿고 싶지 않은 현실 탓이다.
이미 알려진 대로 <선택>은 꽤 오랫동안 ‘묵은’ 영화다. <선택>은 무려 45년 동안 감옥살이를 한 비전향 장기수 김선명 선생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로 홍기선 감독이 수년 동안 각고의 공을 들인 작품이다. 몇몇 제작사를 떠돌며 가슴을 졸여야 했고, 영화진흥위원회의 제작지원까지 받았지만 제작 가능성에 대해서는 거의 모두가 고개를 갸웃하던 천덕꾸러기였다. 단도직입적으로 장사될 영화가 아니라는 이유에서다. 우여곡절 끝에 다행히 신씨네의 결단에 힘입어 지난 10월 촬영을 재개해 마침내 끝을 보게 된 것이다. 영화 <선택>의 앞날이 불투명하던 언젠가 홍기선 감독에게 굳이 왜 <선택>을 고집하느냐고 물었던 적이 있다. 어눌한 말투로 되돌아온 홍기선 감독의 대답은 명료했다. “누군가 꼭 해야 할 이야기이기 때문”이라고.
이 글 때문에 혹시라도, <선택>이 재미없는 고지식한 영화려니 하고 지레짐작하지 마시길. 조폭이나 깡패 이야기에만 의리와 감동이 있는 것은 아니다. 조종국/ 조우필름 대표 kookia@jowo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