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보트 킹>의 복간본을 받아보았다. 검은색 하드보드 표지로 튼튼하게 묶여 나온 이 만화는 원고 한장없이 낡고 조악한 옛 만화책을 다시 찍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깨끗하게 복간되었다. 이 놀라운 프로젝트를 성공리에 시작한 곳은 코스닥에 상장했다는 출판사도, 종합미디어회사를 꿈꾸는 출판사도, 여러 개의 잡지와 커다란 매장까지 갖고 있는 출판사도 아닌 만화를 좋아하는 사람들 몇명이 사재를 털어 운영하는 작은 신생 출판사 ‘길찾기’다. 조금은 촌스러운 출판사명임에도 그 이름에서 느껴지는 진정성의 울림이 큰 것은 그들이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만화를 찍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논문처럼 장정된 <로보트 킹>을 받아보고 먼저 이 작업을 성공리에 마친 도서출판 길찾기 여러분들에게 연대의 박수를 보낸다.
70년대 3대 로봇들의 부활
<로보트 킹>의 복간으로 70년대를 풍미했던 한국의 거대 로봇 3기가 2001년에서 2002년, 기간으로는 약 1년에 걸쳐 모두 부활했다. <철인 캉타우>(1976)에서 <로보트 태권V>(1976), <로보트 킹>(1977)까지 차례대로 순서를 지켜가며 복원되었다. 태권 V가 애니메이션을 기반으로 제작된 출판만화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캉타우와 킹은 열악한 한국 SF만화의 토양이 피워낸 소중한 꽃이다.
거대한 로봇의 기원은 일본만화에서 시작된다. 일본만화에서 거대한 로봇은 힘과 권위의 상징으로 존재한다. <철인 28호>에서 구일본군의 병기였던 로봇은 <마징가 Z>로 와서는 “악마도 신도 될 수 있”는 존재가 되어버렸다. 로봇은 더욱 거대해졌고, 육중해지며 신의 권위를 얻었다. 인류의 문명을 모두 파괴해버린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의 거신병들처럼 일본의 로봇은 종말에 대한 일본인들의 상처와 공포에 중공업에 대한 기대감, 모든 것이 신이 될 수 있는 일본 특유의 종교관이 뒤섞인 것이었다.반면, 고유성의 <로보트 킹>은 거대한 신, 공포의 괴수로 존재하는 로봇의 아우라가 미약하다. 부릅뜬 눈에 반달형 머리장식(이 머리장식이 ‘자이언트로보 2호’의 것이라는 사실은 알고 있다. 치명적인 실수였지만, 이 때문에 작품 전체의 오리지널리티를 무시하면 안 된다)을 지닌 근육질 로봇은 이야기 속에서 웃기도 한다. 일본의 거대 로봇에서 볼 수 없었던 웃음의 여유, 장르간의 크로스오버가 등장한 것이다.
지구를 정복하려는 코코스 일당이 모든 로봇을 한국으로 보내 로보트 킹과 최후의 대결을 벌이는 장면에서 킹이 코코스의 로봇을 누르자 다른 로봇이 카운트를 세고, “킹 폴승!”이라며 손을 든다. 그 순간 킹은 웃는다. 웃는 모습의 킹을 만나는 순간, 킹의 얼굴 표정이 근엄한 ‘신’의 것이 아닌 눈꺼풀이 처진 친근한 ‘친구’의 모습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뿐만 아니다. 가장 냉혹하고 잔인하게 등장해야 하는(그래야 한다고 우리가 생각하는) 악당들도 유머러스하고 인간적이다. 지구를 정복하고, 자신의 마음에 맞는 별들을 한 군데에 모아 새로운 성운을 만들어 그것의 지배자가 되려는 원대한 ‘대혹성 집합계획’의 입안자인 소모사도, 지구의 과학자들에게 배신당해 지구를 정복하려는 꿈을 키우는 코코스도 곧잘 경박스러운 캐릭터로 변신한다. “악당도 웃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고유성의 전략은 적중했다. 반중력장치, 파멸기계와 같은 SF설정과 우주의 질서를 재편하려는 악당에 마신 크라누스에 의해 지구가 파괴당하는 장면이 나오는 SF만화가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성 있게 웃음을 담아낸다는 사실이 놀랍다.
첫 걸음에서 두 번째, 세 번째로
이번 3권은 첫 번째 에피소드인 탄생편이다. 11부 13권이나 되는 장편으로 구성된 <로보트 킹> 전체의 짜임새나 완성도와 비교해보면 그야말로 시작에 불과하다. <로보트 킹>에 대한 추억이 없는 사람이라면, 우리 앞에 놓여진 3권의 만화책은 자칫 낡고 지루한 만화일 수 있다. 하지만 섣부른 판단은 금물이다. <로보트 킹>의 그래픽은 권수를 더할수록 더욱 정교해지고, 이야기는 풍부해지며, 개그 센스도 내공을 더한다. 이야기는 시작되었다. 25년 만에 천재적인 ‘고박사’와 멋진 주인공의 표상 ‘유탄군’과 적극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멋진 활약을 보이는 사이보그 ‘호연양’이 우리 앞에 시공간을 넘어 도달했다. 무엇보다 소년에게 멋진 로망이었고 동시에 웃음의 향연이었던 ‘로보트 킹’이 돌아왔다.대중적인 매체를 통해 근대만화가 시작된 기점을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대한민보> 창간호인 1909년으로 잡으면 7년 뒤 이 땅에 근대만화가 시작된 지 100년이 된다. 하지만 우리에게 남은 만화는 얼마 되지 않는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하는 이야기지만, 내가 본 만화를 우리 아이가 보고, 다시 그 아이의 아이가 보는, 만화를 통한 문화적 공감대의 형성은 한 나라의 문화지수를 높이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로보트 킹>도 소중한 한 걸음을 내디뎠으니 이제 복원이라는 말이 필요없게 쇄를 거듭하고, 판을 거듭하기를 바란다. 더불어 이 힘든 첫 걸음에 함께 동참한 800여명의 선주문자들에게도 박수를. 그리고 다시 한번 길찾기에도 분발의 박수를. 박인하/ 만화평론가 enterani@yaho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