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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시간의 흐름 종말로 치닫는 자아 <도니 다코>
2002-11-15

시간이 화살처럼 한 방향으로만 흐른다는 건 시계의 발명만큼이나 오래된 믿음이다. 그게 삼차원 공간에 매인 존재의 편견에 지나지 않는다는 건 물리학의 슈퍼스타 아인슈타인의 새로운 일깨움이다. 그에 따르면 공간은 공 모양 또는 말 안장 모양으로 휘어있고, 시간 또한 화살표 방향으로만 흐르란 법은 없다. 빛의 속도를 넘어설 수만 있다면 인간은 시간을 화살표의 반대 방향으로 흐르게 할 수도 있다. 현실과 환상을 씨줄과 날줄 삼아 직조한 듯한 리처드 켈리(27) 감독의 매혹적인 공포 영화 <도니 다코>의 이야기 전개는 미로처럼 꼬여있지만, 시간의 흐름에 관한 아인슈타인의 대담한 주장을 받아들이기로 한 사람이라면 그다지 혼란스럽지 않을 수도 있을 듯하다. 고등학생 도니 다코(제이크 길렌할)는 몇 년 전부터 몽유병과 정신분열증으로 정신과 상담과 약물 치료를 받고 있다. 냉소적이고 보수적인 아버지, 침착하고 정감 많은 어머니, 대학 진학을 앞둔 자유분방한 누나, 어린 늦둥이 여동생과 함께 사는 도니는 어느 날 엽기토끼는 상대도 되지 않을 만큼 그로테스크한 토끼 가면을 쓴 괴물 프랭크로부터 “종말이 28일 6시간 42분 12초 남았다”는 메시지를 듣는다. 그가 프랭크에 이끌려 아침 이슬 내리는 골프장 한가운데서 깨어난 사이, 항공우주국도 정체를 밝혀내지 못한 비행기 엔진 하나가 그의 방에 떨어져 집이 반파된다. 그 소란스런 날 도니의 학급엔 아버지가 어머니를 칼로 마구 찌르고 달아나는 가정폭력을 겪은 그레첸 로스(제나 말론)란 여학생이 전학온다. 몽환적인 도니와 자폐적인 그레첸은 서로를 알아본다. 그레첸은 학교의 껄렁패들에게 상처입지만, 그와 비례해 도니와 그레첸의 사이는 가까워진다. 무엇보다 도니를 미치게 만드는 건 학생들에게 도식적인 정신개조를 강요하는 밥맛 떨어지는 체육교사 부류들이다. 그가 불러들인 뉴에이지 정신개조운동가 짐 커닝험(패트릭 스웨이지)은 <매그놀리아>의 톰 크루즈보다 몇 배는 재수 없는 이중인격자다. 교사들이 자족적인 교육의 성취에 한껏 도취해 있을 때, 예민한 학생들은 교사 살해나 학교 방화 따위의 망상과 자폐에 빠져든다. 시간은 프랭크가 예언한 종말의 때를 향해 흘러가고 그 날은 할로윈 축제와 겹친다. 도니가 프랭크를 처음 만난 건 1988년 10월 2일. 할로윈 축제가 시작된 10월30일, 마침내 프랭크가 말한 종말이 닥쳐온다. 영화에서 시간은 10월 2일과 10월30일 사이를 천천히 흐른 뒤 뫼비우스의 띠처럼 역류해 그 뒤로 10월2일이 이어짐을 친절하게 다시 보여준다. <도니 다코>의 몽환적 시간에서 종말이란 영원을 향해 날아가는 화살표의 어느 지점에서 파멸에 이른 자아가 지르는 비명이다. 그것만으로도 화살표처럼 흐르는 시간은 인간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지 않느냐고 영화는 말하는 듯하다. <도니 다코>는 다양한 해석에 문을 열어둔 영화다. 그것은 시간의 완고한 화살표에 대한 반역이자, 우리가 준비 없이 맞이할 수밖에 없는 운명에 대한 쓸쓸한 되새김질이다. 어떤 한가지 장르 안에 가두기 힘든 이 영화는 몽상을 먹고 사는 재기 발랄한 또 한 명의 감독이 탄생했음을 알리는 수작이다. 듀란듀란의 <노토리오스>, 에코 앤 더 버니맨의 <더 킬링 문> 등 80년대 펑키 록이 영화에 암울하고 최면적인 색조를 더해준다. 22일 개봉. 이상수 기자 leess@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