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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로시마 내 사랑>
2001-04-17

시사실/ 히로시마 내사랑

알랭 레네에게는 오직 하나의 영화적인 주제, 즉 죽음으로부터 돌아온 자, 혹은 그의 육체만이 있다고 말한 것은 철학자 질 들뢰즈였다. <히로시마 내 사랑>의 첫 장면은 언젠가 레네에 대해 들뢰즈가 했던 이런 언급부터 떠올리게 한다.

영화가 시작되면 먼저 스크린에 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서로 껴안고 있는, 벌거벗은 두 사람의 어깨와 팔이다. 그 육체들 위에는 재 모양의 미립자들이 뿌려진다. 이 이름 모를 육체들 위에 잔뜩 뿌려진 가루들을 씻겨주는 것은 이 숏 위로 오버랩되는 다른 숏이다. 이 장면들이 상징적으로 대략 무얼 보여주려 하는지를 짐작하기란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닌 것 같다. 히로시마에 투하된 원자폭탄이 불러온 끔찍한 양상을 담은 장면들이 이어지는 것으로 미루어볼 때, 영화의 그 첫 숏들은 분명 핵폭발 때 생기는 버섯구름의 형상과 아주 닮아 보이니까 말이다. 그러니까, <히로시마 내 사랑>의 도입부는 우선적으로 이것이 원폭으로 대표되는 지난 시대의 고통이 어떤 식으로 현재의 육체에다가 그 ‘흔적’을 남기고 있는가에 관한 영화임을 알려준다.

영화의 첫 장면에 대해 폴린 케일 같은 평론가는 “원자폭탄에 반대하는 강력한 프로파간다”라고 표현하기도 했지만 사실 이 영화에서 레네가 관심을 가진 대상이 가공할 실물 무기로서의 원폭이거나 분명한 역사적 시공간으로서 1945년의 히로시마였던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애초 레네가 착수한 것은 원폭에 관한 영화였지만 결국에 그가 완성한 영화는 그런 것이 아니었다. 이미 이전에 그는 홀로코스트를 다룬 다큐멘터리 <밤과 안개>(1955)에서 특정한 사실(事實)을 통해 과거와 기억이라는 좀더 보편적인 문제로 귀착했었다. 마찬가지로 <히로시마 내 사랑>에서도 그는 기억에 대한 집착, 기억에 남겨진 상처라는 자신의 고유한 관심 영역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영화 속 주인공인 ‘그녀’는 죽은 자신의 첫사랑에 대한 망집에 사로잡혀 있다. 2차대전 중 독일이 프랑스를 점령하던 시기에 그녀는 한 독일군 병사와 사랑에 빠지게 되었는데, 독일군이 마을에서 물러가면서 그녀의 첫사랑은 분노한 마을 사람들에게 죽임을 당한다. 또 적한테 ‘협력’했다는 죄목으로 그녀는 사람들 앞에서 머리를 깎이고 지하실에 감금된다. 결국 고향인 느베르를 떠나 파리에 오던 날 그녀는 히로시마에서 일어난 사건에 대해 듣는다. 이때부터 그녀에게 느베르와 히로시마는 일종의 통교가 이루어진 공간으로 느껴지게 된다. 그래서 첫사랑의 기억을 잊지 않으려 발버둥치는 그녀는 자연스레 “나는 히로시마의 모든 것을 보았어요”라고 말할 수 있게 되고 또 ‘히로시마의 고통’을 자신도 똑같이 겪었던 양 이해하게 된다.

느베르와 동일한 시공간에 존재하는 히로시마는 그녀에게 과거, 즉 끊임없이 현재화하는 과거일 수밖에 없다. 그녀의 이런 의식상태를 시각화하기 위해 레네가 채택한 것은 병치(juxtaposition)의 적절한 방법론이라고 부를 만한 것이다. 예컨대 침대에 엎드려 있는 일본인 건축가 ‘그’의 가볍게 흔들리는 손은 어느새 죽어가는 그녀 첫사랑의 떨리는 손으로 이어진다. 그렇게 기억은 현재의 틈을 비집고 들어온다. 영화의 후반부에 이르면 그녀의 시선과 발걸음을 대신하는 이동하는 카메라는 느베르와 히로시마를 번갈아 보여준다. 그렇게 기억은 현재와 공존한다. 많은 평론가들이 지적하듯이, 그렇기에 <히로시마 내 사랑>은 과거와 기억을 다루는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영원한 현재의 상태에서 움직이게 되는 것이다.

스토리 전개에 의존하는 전통적인 소설보다는 ‘의식의 흐름’에 따르는 소설에, 아니면 자유분방한 시나 에세이에 가까워 아주 아름답고 또 매혹적인 영화 <히로시마 내 사랑>은 영화사의 새로운 시기를 열었던 위대한 작품임에 틀림없다. <히로시마 내 사랑>이 발표될 당시 당연하게도 <카이에 뒤 시네마>의 평론가들은 이 영화에 대해 토의하는 자리를 가졌는데, 여기서 에릭 로메르는 자신과 비슷한 연배의 영화감독인 레네를 가리켜 일종의 큐비스트(cubist)라고 부를 수 있다고 말했다. 로메르가 이야기하기를, 이건 회화에서 큐비즘이 시도하고자 했던 것을, 영화라는 매체를 통해서도 실행해보고자 했던 인물이 곧 레네라는 의미였다. 다시 말해 레네야말로 사운드영화의 시대가 도래한 이래 처음으로 현대영화(modern cinema)를 만들어낸 영화감독이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영화만들기의 새로운 자의식을 보여줬던 <히로시마 내 사랑>은 같은 해에 나온 다른 뛰어난 프랑스영화들(장 뤽 고다르의 <네 멋대로 해라>, 프랑수아 트뤼포의 , 클로드 샤브롤의 <미남 세르주> 등) 가운데 가장 창의적인 작품이었을 뿐 아니라 영화사의 시대를 나누는 분기점이 된 작품이기도 했던 것이다.

홍성남/ 영화평론가

문학적 모더니스트, ‘기억’에 대해 묻다...감독 알랭 레네

알랭 레네(1922∼ ) 감독은 조르주 프랑주, 아녜스 바르다, 크리스 마르케 등과 함께 흔히 ‘좌안파’(rive gauche)라 알려진 그룹의 일원으로 꼽힌다. 비슷한 시기에 영화 활동을 시작한 <카이에 뒤 시네마>의 비평가 출신 감독들(고다르, 트뤼포, 샤브롤 등)에 비해 좌안파라 불린 이들은 대체로 나이도 많았고 영화광적인 기질에서는 좀 못 미쳤다. 대신 그들은 영화와 다른 예술, 특히 문학과의 유사성에 주목하면서 모더니즘적인 영화들을 만들었다고 이야기된다.

레네 역시 좌안파 출신답게 주로 ‘문학적인’ (모더니즘)영화를 만들어온 것은 사실이지만 영화에 대한 사랑이 결코 모자라지는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어려서 부모에게서 8mm 카메라를 선물받았던 그는 열두살 때 이미 첫 영화들을 만들 정도였다. 당시 그는 무성영화 시대에 인기있던 시리즈 범죄영화인 <팡토마>를 자기 식으로 만들기도 했다. 영화감독으로서 레네의 경력은 <반 고흐>(1948), <고갱>(1950), <게르니카>(1950)처럼 예술가나 예술작품들을 다룬 몇몇 다큐멘터리 작업을 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유대인 수용소를 다룬 러닝타임 30여분 정도의 다큐멘터리 <밤과 안개>를 내놓을 쯤 이미 그는 사람들 사이에서 새로운 프랑스영화를 만들어갈 중요한 인물 가운데 하나로 이야기되곤 했다. 그리고 이 영화에서부터 그는 ‘기억에 대한 집착과 기억하기의 어려움’이라는 자신의 주제를 선보였다. 장편 데뷔작 <히로시마 내 사랑>말고도 그는 <지난해 마리엥바드에서>(1961), <뮤리엘>(1963), <전쟁은 끝났다>(1966) 등 영화사에 다수의 걸작들을 남겼다. 아직 국내에 제대로 소개되지 않은 그의 영화들은 서울 시네마테크에서 올 5월 말에 열릴 알랭 레네 회고전을 통해 선보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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