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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카 마사토의 <폭력의 도시>
2002-11-14

당신들은 감히 진실을 알고 싶다고 말하지

“좋은 밤입니다. 키도 시게미츠입니다.” 최고의 시청률을 자랑하는 ‘뉴스 익스프레스’는 이처럼 깔끔한 멘트로 시작되지만, 사실상 유례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더럽고 잔인한 뉴스 쇼다. 캐스터인 키도에게 두려움이란 없다. 더 높은 시청률을 위해서라면 어떤 비난과 희생도 감수할 준비가 되어 있다. 시청자란 무엇인가 겉으로는 도덕과 규율을 이야기해도, 무엇이든 감추어진 것은 들여다보지 못해 안달하는 호기심의 존재가 아닌가 그들에게 무엇이든 숨긴다면 그것은 뉴스의 자세가 아니다. 그래서 키도는 저지른다. 이지메로 죽은 소년의 유서를 공개하며, 그를 죽음에 이르게 한 가해 소년들이 린치를 당하도록 만든다. 성폭력으로 죽은 소녀의 아버지가 벌이는 복수극을 중계하기 위해 함정을 파놓는다. 그 스스로 납치되어 자신이 죽을 위기에 처한 현장을 단독 중계하기까지 한다. 사실상 그의 뉴스는 ‘사실을 전하는 매체’가 아니라, ‘사실을 만들어내는 매체’이다.

사실을 ‘만들어내는’ 뉴스

도다 유키히로(戶田幸宏)의 스토리를 나카 마사토(中祥人)가 만화로 그린 <폭력의 도시>(暴力の都)는 1996년 슈에이사의 주간 <영 점프> 스토리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원래는 그해에 전 3화로 단기 연재될 예정이었으나, 1997년에 장기 연재가 시작되어 2000년까지 12권의 단행본을 발간했다. 현재는 연재가 종료되었지만, 최근 특별편을 발표할 정도로 인기의 여파는 상당했던 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막강한 미디어의 배후에서 뒤틀리는 진실의 이야기를 나오키 이노세/ 히로카네 겐시 콤비의 만화 <라스트 뉴스>에서도 확인한 바 있다. 그러나 <폭력의 도시>는 히로카네식의 도덕적 강박을 벗어난 안티 히어로 ‘키도’를 통해 전혀 다른 색채를 보이게 된다. 키도라는 존재는 참으로 알 수 없다. 그는 자신의 입을 막기 위해 누군가 보내온 사진을 정면으로 뉴스에 공개하며, “나는 동성애자”라고 당당히 말한다. 폭력 조직에 납치된 뒤에도 두려움의 티끌도 보이지 않고, 막강한 정치 실세의 비리를 폭로하고자 한다. 심지어 자기 직속 상관의 압력까지 생방송이 가진 힘을 통해 무시해버린다. 그러나 이처럼 언론 자유의 화신처럼 보이는 그의 모습 반대편엔, 자신에 대한 살해극을 인위적으로 연출하고 뉴스 대상의 상처를 잔인하게 파고드는 악마의 그림자가 강하게 드리워져 있다.

‘뉴스 익스프레스’를 종영하게 되면서 그는 말한다. “TV라는 이 거대한 미디어는 바꿔 말하면 거대한 폭력입니다. 그리고 저는 폭력의 도시에 군림하는 왕이었습니다.” 그는 왕이 가진 절대권력으로 TV를 최고의 선으로, 혹은 최고의 악으로 이끌어갈 수 있다고 여기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최종의 진실을 위해 약간의 술책과 사기 정도는 불가피하다고 여기는 마키아벨리적인 정치관의 소유자인 듯도 하다.

그런데 이 작품의 전반에 흐르는 위화감은 무엇 때문일까 선악의 이중적 존재인 키도의 카리스마가 만들어내는 시소게임 때문인가 단순히 그렇게 단정해버리기엔 뭔가 찜찜한 구석이 없지 않다. 키도는 여러 에피소드의 서두에서부터 클라이맥스까지는 허위의 정의감을 완전히 벗어던진 쿨한 존재로 보인다. 그리고 그 존재감이 작품의 매력을 한껏 충만시킨다. 그러나 대체로 결말부에는 ‘도덕적으로 훌륭한 결과’를 가져오는 선의 존재로 그려진다. 그 사이가 지나치게 거칠다.

진실을 위해 사기친다, 마키아벨리적 정치관

과거 자신의 취재 대상이었으나 지금은 치매로 누워 있는 소매치기 할머니를 돌보는 키도, 자신의 살해 쇼에 동원한 AD에게 ‘누구나 외롭다’는 동질감을 심어주는 키도, 이지메로 친구를 죽여버린 소년을 찾아가 결국은 눈물을 받아내는 키도는 돌연 신파극의 주인공이 되어버린다. 특히 제2화인 ‘부활’의 에피소드들에서는 부패한 정치가 형제의 문제를 어린 시절의 우정과 순수를 회복하는 것으로 해소시켜버리는, 정말로 진실을 향해서는 조금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우유부단한 결말로 나아가고 만다. 한번 차갑고 냉정해졌다면 철저히 그 규율을 지켜나가는 것이 좋지 않았을까 아니면 이 만화도 어쨌든 평균적인 독자들을 감동으로 이끌도록 강제하는 ‘독자엽서의 권력’을 따라간 것을 확인함으로써, 또 다른 미디어의 힘을 시인하도록 한 것일까

나카 마사토의 작화는 완전히 정리되었다는 느낌은 받기 어렵다. 전체적인 인물의 묘사는 80년대 성인 대상의 극화에서 형성된 필체를 이어받고 있는 듯하고, 키도의 캐릭터는 아쓰시 가미조의 <토이>의 주인공과 여러모로 닮아 있다. 상당히 다양한 연출을 시도하며 여러 각도에서 각진 사실형의 얼굴들을 그리고 있는데, 주인공을 제외하곤 캐릭터의 일관성이 조금 부족해 보인다. 몇몇 곳에서는 장면의 연결이 매끄럽지 않아 보이는데, 이처럼 분명한 스토리와 주장이 중심이 되는 작품에서는 가급적 독자들의 오해나 혼란을 가져올 표현은 줄이는 게 낫지 않았을까 이러한 여러 난점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분명히 다음 권을 기다리게 될 터인데, 그것은 ‘도대체 어떻게 하려고 이러나’ 싶은 과감한 상황과 키도의 강렬한 카리스마 때문이리라. 이명석/ 프로젝트 사탕발림 운영 중 www.sugarspra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