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ovie > 무비가이드 > 씨네21 리뷰
여성의 일과사랑에 대한 순진한 판타지,<스위트 알라바마>
2002-11-12

■ Story

뉴욕 패션가의 촉망받는 디자이너 멜라니 카마이클(리즈 위더스푼)은 뉴욕 최고의 신랑감으로 꼽히는 앤드류(패트릭 뎀시)와 목하 열애 중이다. 첫 번째 패션쇼를 성공리에 치른 날, 멜라니는 앤드류의 프로포즈를 받는다. 그러나 멜라니에겐 말 못할 비밀이 있었으니, 고향인 알라바마에 남편이 있었던 것이다. 7년 전에 고향과 남편을 한꺼번에 등진 멜라니는 앤드류와의 새로운 출발을 위해 남편 제이크(조시 루카스)를 찾아가 이혼을 요구한다. 제이크는 이혼해줄 수 없다고 완강히 버티고, 멜라니의 협박과 애원은 잘 먹혀들지 않는다. 한편 며느릿감을 탐탁지 않아하는 앤드류의 어머니(캔디스 버겐)는 멜라니의 뒷조사를 시작하고, 앤드류는 멜라니를 위한 깜짝쇼를 계획하며 앨라배마를 찾아간다.

■ Review

두 남자 사이에서 한 여자가 갈등 중이다. 기호 1번은 뉴욕의 명망 높은 정치인 집안 아들로, 그 자신도 언젠가는 유력한 정치인이 될 재목이다. 지적이고 매너 좋고 용모 수려하고, 여자에 대한 극진한 사랑을 로맨틱하게 표현할 줄 안다. 여자의 집안을 장미꽃밭으로 만든 것으로 모자라, 티파니 매장을 통째로 빌려 청혼하는 남자다. 그에 비하면, 기호 2번의 조건은 좀 기운다. 남부 촌뜨기인 그는, 가진 것도 없고 이룬 것도 없으면서, 여자 위할 줄도 모른다. 표현하지 못하는 사랑을 가끔 맘에도 없는 비난의 말들로 쏟아낼 뿐. 그에게 승산이 있다면, 그건 여자와 함께한 추억이 많기 때문이다. 그는 여자의 첫 키스 상대이자, 현재 스코어, 여자의 남편이니까.

처음엔 재고의 여지도 없는 듯 보인다. 여자는 자신의 과거, 고향과 첫 남자, 주어진 운명에 안녕을 고한 지 오래다. 무작정 뉴욕으로 날아가 패션계의 ‘무서운 아이’로 급성장한 입지전적인 인물로, 자신의 꿈에 날개를 달아줄 왕자님의 구애까지 받아놓은 상태다. 그런 마당에 잊고 싶고 감추고 싶던 과거의 남자를 돌아볼 이유란, 없어 보인다. 그런데 그 지긋지긋한 과거와 완전히 ‘쫑’을 내러 찾아간 고향에서, 여자는 아늑하고 편안한 행복감을 느끼고, 그렇게 뜻밖의 갈등이 시작된다. <스위트 알라바마>의 멜라니는 그리하여, 신데렐라로 올라설 것이냐, 평강공주로 눌러앉을 것이냐, 기로에 서게 되는 것이다. 그 선택에 앞서 멜라니는 스스로에게 확인해야만 한다. 나는 누구인가,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라고.

따라서 <스위트 알라바마>는 세 남녀의 러브 스토리이지만, 동시에 자신의 내면으로 떠나는, 멜라니의 여행담이기도 하다. 멜라니가 앨라배마 고향 땅을 밟는 순간부터 우리는 그녀가 절연했던 ‘충격적인 과거’()와 조우하게 된다. 고향 사람들이 기억하고 회술하는 멜라니의 모습은 엉뚱하고 충동적이며 다혈질적인 성미로 악명 높았던 말썽꾸러기다. 그들에겐 뉴욕 여피의 우아하고 화려한 모습으로 금의환향해 으스대는 멜라니가 오히려 낯설다. 멜라니의 분열된 자아가 충돌하면서, 알라바마와 뉴욕의 남북 지역 감정도 ‘서브와 리시브’를 거듭하는데, 이때부터 영화는 슬슬 편파 판정의 조짐을 보인다. 남북전쟁 기념행사를 전전하는 멜라니의 아버지는 “과거는 잊는다고 해서 잊어지는 것이 아니”라고 훈시하는데, 그것이 이 영화의 진심이다. 당신이 그토록 찾아 헤매던 것은, 뒤에 두고 온 그 무엇일 수 있다는 얘기. 그러니 “두 얼굴의 여자” 멜라니를 사랑하는 남자들 중에서 누가 ‘진짜 얼굴’을 알고 있고 사랑하고 있는지도, 아울러 자명해진다.

(왼쪽부터 차례로)♣ 멜라니는 일과 사랑에서 짜릿하고도 달콤한 성공을 일궈가는 중이다. 뉴욕 패션가의 촉망받는 디자이너인 그녀는 완벽한 남자 앤드류의 청혼까지 받는다.♣ 아무도 모르게 숨겨놓은 과거, 오래 전 별거에 들어간 남편 제이크와의 결혼생활을 청산하기 위해 고향으로 돌아간 멜라니는 예상 밖의 암초를 만난다. 바로 스위트 홈에서 함께한 그들의 추억이다.

<스위트 알라바마>는 멜라니와 제이크의 밀고 당기는 관계를 스크루볼코미디의 틀과 리듬을 빌려 경쾌하게 묘사하기도 하고, 마지막 결단의 순간까지 무수한 변수와 돌출상황을 던지지만, 결과적으로는 현대 여성의 일과 사랑에 대한, 매우 순진한(또는 구태연한) 판타지다. 여성의 독립과 성공을 다루고 있긴 하지만, 시골에서 무작정 상경()한 멜라니가 얼마나 강퍅한 시간을 거쳐 커리어우먼으로 성공했는지에 대해, 영화는 침묵한다. 그것은 성취해나가는 과정이 아니라 주어진 설정이고, 따라서 ‘운명적인 사랑’이라는 이름 앞에 내쳐질 수도 있다는 얘기다. 로저 에버트의 말마따나, “작은 시골 마을이 대도시보다 좋은 곳이라는, 할리우드 스스로도 믿지 않는 신화를 재현”하고 있기도 하다. 이처럼 리얼리티가 희박하긴 하지만, 여성과 남성 모두의 판타지를 얼마간 충족시켜주는, 미워할 수 없는 영화. 미국 개봉 첫주에 3800만달러의 매표수익으로, 역대 로맨틱코미디 사상 최대 오프닝 기록을 세웠다. 박은영 cinepark@hani.co.kr

관련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