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승화 전 육군참모총장이 세상을 떠났을 때 나는 연재 중이던 인터뷰 원고 말미에 다소 뜬금없이, ‘추신’으로 이렇게 썼다. 군 복무 시절 1군사령관일 때 잠깐씩 마주친 그는 표정이 매우 온화했다. 박정희가 사망하고 계엄사령관에 오른 그는 민주화운동 세력에 ‘군부의 희망’으로 비치다가 전두환의 하극상 신군부에 피체, 보충역 2등병으로 강등되고 실형을 살다가 88년 대장 계급을 회복하고 97년 무죄가 확정된 뒤 민주당 상임고문 등을 맡았으나 큰 역할은 하지 못했다. ‘군부의 희망’이 필요하던 시기는 아주 짧았다. 그때 희망이 실현되었다면 5·16에 의해 ‘군사적’으로 왜곡된 한국 현대사가 어느 정도 교정될 수 있었을까, 라고 묻는 것은 부질없지만, 어쩔 수도 없다….
세계사에 유례없이 가혹했던 6·25 전쟁을 치르고도 ‘대한민국 군인’이 마음속에서 우러난 존경을 받기 힘들게 된 매우 희한한 남한 상황은 6·25 전쟁의 ‘형식’이 유감스럽게도 민족상잔이었고, 무엇보다 박정희 군사쿠데타가 한국 현대사 대부분을 ‘부조리 연극화’했기 때문이지만 지켜야 할 나라가 엄연히 있는 한 평생 군인이 대접받지 못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상무정신이 스포츠 정신으로, 스포츠 정신이 연예인 정신으로 변해가는 것 또한 위험한 일이다. 육체는 정신을 유지할 뿐 아니라 ‘존엄을 구체화’하는 매개인 까닭이다.
이 책은 그런 문제를 해결하는 매우 훌륭한 답이다. 어린 시절은 그렇다 치고 1947년 조선경비대 사관학교(육군학교 전신) 5기로 입교한 뒤 50년 6·25와 60년 4·19와 61년 5·16, 79년 10·26과 12·12 등 현대사의 ‘정치적’ 사건을 성실한 ‘군인’으로 치르고 당한 그가 들려주는 생애 회고는 ‘올바른 일상’의 군인상을 복원하는 데 크게 도움이 될 것이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왜곡된 자서전 개념 또한 이 책을 통해 크게 교정된다. 정리-대필자 이경식은 영화 <너에게 가마, 나에게 오라> 시나리오 작가답게 담담하고 찬찬한 문체로, 매우 절묘하게 육체 일상의 존엄을 형상화, 딱딱하고 공식적인 ‘자서전 틀’을 감동적인 생애 문학의, 파란만장한 결로 승화시킨다.
저런저런 병신, 육참총장이…. 직업군인으로 전두환과 악연이 있었던 아버지는 12·12사태에 대해 그렇게 논평하셨다. 하지만 정승화가 ‘정치적’이지 않았던 것은 매우 다행이다. 그랬다면 정말 ‘정치군인’밖에 알지 못했을 것 아닌가. 한심할 정도로 정치에 무지한, 그러므로, 훌륭한 군인, 대중에 알려져야 마땅한 보통군인( 5성장군) 상이 이 책에 완성되어 있다. 김정환/ 시인·소설가 maydapoe@thrunet.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