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느 분야에서처럼 영화계에서도 한다한 사람들의 다수가 영어 이름을 지닌 것은 이해할 만한 일이다. 앵글로색슨 족속은, 구체적으로 주류 미국인들은, 다른 분야에서와 마찬가지로 문화에서도 세계를 제패했으니 말이다. 변방에서 위대한 재능이 태어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런 재능이 공인을 받아 부(富)나 명예나 권력으로 환산되기 위해서는 제국의 메트로폴리스에 줄이 닿아야 한다. 미국은 세상의 모든 재능을 게걸스럽게 빨아들이는 흡반이다. 그래서 쓸 만한 재능은, 성(姓)에 출신지의 흔적을 남기더라도, 적어도 이름에서는 영어 냄새를 풍겨야 한다. 경제계의 제리 양이든, 영화계의 재키 찬이든. 더러는 프랑스 대중음악의 조니 할리데이처럼 이름과 성이 동시에 영어화되기도 한다.
그래서 연출자가 주세페 토르나토레라는 비영어 이름을 갖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영화 <피아니스트의 전설>은 도도록하다. 더구나 그 이름은 <시네마천국>과 얽혀 있다. 이탈리아는 할리우드 제국군대에 맞서는 몇몇 게릴라 기지 가운데 하나였다. 그 게릴라 지도자의 이름들(루키노 비스콘티, 로베르토 로셀리니, 비토리오 데 시카, 페데리코 펠리니, 피에르 파올로 파졸리니에서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질로 폰테코르보,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프란체스코 로지를 거쳐 엔리코 올도니, 마우리치오 니케티, 마리오 마리토네, 주세페 토르나토레에 이르는)은 모두 모음으로 끝난다. 이 열린 음절들은 할리우드영화의 견고한 뚜껑에 깨알만한 크기로 난 숨구멍들이다. 많은 이탈리아 감독들의 이름을 마무리하는 'ㅗ'는 그 나라의 악명 높은 남성우월주의만이 아니라 할리우드에 대한 삐침도 품고 있는 것 같다.
<피아니스트의 전설>은 배에서 태어나 배에서 살다 배에서 죽은 천재 피아니스트의 얘기다. 이 천재의 이름은 나인틴헌드레드다. 그가 1900년생이어서다. 그러니 그는 트럼펫 연주자 루이 암스트롱과 동갑내기다. 암스트롱이 만일 피아니스트였다면, 토르나토레는 젤리 롤 모튼 대신 암스트롱을 버지니안호에 승선시켜 나인틴헌드레드와 겨루게 했을지도 모른다. 암스트롱이 핫파이브, 핫세븐 같은 악단을 이끌고 취입한 레코드들은 지금도 재즈팬들을 사로잡는다. <피아니스트의 전설> 원작자의 상상력을 따르자면, 나인틴헌드레드의 피아노 연주는 암스트롱의 트럼펫 연주 못지않은 격조를 지녔을 터이다. 그러나 영화 속에서 나인틴헌드레드의 연주를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가 레코드 취입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니, 딱 한번 했으나, 복제를 거부하고 원판을 파기해버렸기 때문이다. 그 원판은 나인틴헌드레드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사랑을 느낀 여성에게 헌정될 참이었다. 그러나 사랑의 여신은 나인틴헌드레드에게 등을 돌렸고, 두 사람은 맺어지지 못했다. 나인틴헌드레드의 원판 디스크는 기술복제 시대에 복제를 거부한 예술이다. 그래서 거기에는 이른바 아우라라는 것이 출렁인다. 나인틴헌드레드는 20세기 예술가였으면서도, 마치 17세기 예술가 생트 콜롱브(<세상의 모든 아침>의 비올라 연주자 말이다)처럼 복제 너머에 있었다. 누군가가 그의 연주를 들으려면 버지니안호에 직접 올라 ‘생으로’ 들을 수밖에 없었다. 그 점에서 나인틴헌드레드의 예술은 실존적이었다.
<피아니스트의 전설>은 연출자의 이탈리아 이름에도 불구하고 영어로 만들어진 영화다. 주세페 토르나토레는 아예 그 시나리오를 영어로 썼다고 한다. 버지니안호가 영국과 미국을 오가는 배이므로 자연스러운 일일 수도 있지만, 영화를 더 많은 사람에게 팔기 위한 고려도 작용했을 것이다. 그것은 아쉬운 일이지만 비판할 일은 아니다. 제작진은 영화 속에서 버지니안호 노릇을 할 배를 찾아 전세계의 항구를 뒤지다가 우크라이나의 오데사에서 찾아냈다고 한다. 레흐 바웬사가 이끄는 솔리다르노스치의 둥지가 될 폴란드 그다니스크 조선소에서 그 배가 만들어졌다는 뒷얘기도 재미있다. 이 배가 정박해 있던 오데사는 1905년 전함 포템킨호의 수병들이 차르의 전제정치에 맞서 반란을 일으켰던 도시다. 이 실패한 반란은 세르게이 에이젠슈테인의 1925년 영화 <전함 포템킨> 속에서 선동적으로 재구성되었다.
암스트롱말고도 나인틴헌드레드의 유명한 동갑내기는 많다. 우선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마거릿 미첼, 쥘리앵 그린 같은 소설가들이 그의 동갑내기다. 영화감독 루이스 브뉘엘, 시인 자크 프레베르, 배우 헬레네 바이겔, 작곡가 쿠르트 바일, 물리학자 프레데리크 졸리오 퀴리, 사회심리학자 에리히 프롬도 그렇다. 나인틴헌드레드의 재능이 이들 동갑내기만 못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무명으로 죽었다. 그가 세상 속으로 들어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제 마음을 훔쳐버린 여성을 찾아 세상 속으로 들어가려던 나인틴헌드레드가 끝내 땅에 발을 딛지 못하는 것은 버지니안호의 트랩에서 바라본 육지가 그 끝을 보여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그때의 느낌을 땅의 세계에는 건반이 너무 많다는 은유에 담았다. 그 많은 건반을 다룰 자신이 없다는 그의 고백은 무능의 고백이면서 순정의 고백이기도 할 것이다.고종석/자유기고가 aromachi@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