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화질 프로그램 방송시간 연장 논의가 진행되는 가운데 방송사와 관련 직능단체들이 제작 여건을 고려하지 않은 처사라고 반발하고 있다.
방송위원회 산하 제3기 디지털방송추진위원회는 현재 주당 10시간씩인 고화질(HD) 의무방송시간을 내년부터는 50% 늘려 주당 15시간 이상 내보내도록 하고, 고화질 카메라로 제작한 화면이 50% 이상이 돼야 고화질 프로그램으로 인정한다는 등의 안을 마련해 연말께 방송위원회 차원에서 정책으로 확정할 계획이다. 이에 대해 방송프로듀서연합회, 방송기술인연합회, 방송사 노조 등이 최근 일제히 성명을 내어 “고화질 프로그램 제작에 필요한 시설과 환경이 조성돼 있지 않은 상태에서 일방적으로 의무시간을 강요하는 것은 말이 안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현재 방송3사의 ‘고화질’ 편성은 제작이 비교적 까다롭지 않은 토크쇼와 공연물, 시트콤 등 스튜디오물에 치우쳐 있다. 한국방송 1텔레비전 「국악한마당」과 2텔레비전 「행복채널」 , 문화방송 「가요콘서트」 「논스톱」 「타임머신」, 에스비에스 「한선교-정은아의 좋은 아침」 「진실게임」 등이다.
하지만 정작 화려하고 역동적이며 섬세한 화면이 살아나는 다큐멘터리, 드라마 등은 활성화하지 못하고 있다. 최근 에스비에스가 고화질로 방송하고 있는 「대망」은 예정보다 10개월 정도 늦춰져 전파를 타기 시작했으며, 한국 문학작품 가운데 100편을 엄선해 지난해 6월부터 을 고화질로 제작할 예정이던 한국방송도 「19세」 한편만 방송한 채 중단했다.
이는 고화질 제작비가 비싼 방송장비부터 시작해 세트제작, 분장 등에 이르기까지 이전 아날로그 때보다 20~100%나 느는데 방송사들이 부담을 느끼기 때문이다. 문화방송 편성국의 한 관계자는 “편당 8000만원 정도 투입됐던 「베스트극장」이 고화질 제작을 해보니 2억원 가량이 들어가 제작비가 갑절 이상 늘었다”고 어려움을 호소했다. 방송사들은 “현실적으로 광고단가가 정해져 있고 디지털텔레비전 수상기가 많이 보급되지 않은 상황에서 굳이 고화질 프로그램을 늘릴 필요가 있느냐”고 주장하고 있다.
디지털방송추진위 관계자는 “내년부터는 평일 오후 7시~11시의 황금 시간대 편성물엔 1.5배의 가중치를 주고 방송사에 재정지원을 하는 방안도 마련 중”이라며 “연말께 방송위 차원에서 정책화 여부가 결정된다”고 밝혔다.
권정숙 전종휘 기자 good@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