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tory
짝사랑하는 여인에게 사랑고백하는 데는 한없이 느림보지만, 운전 하나만은 세계 최고인 지미 통(성룡). 비밀 첩보국 CSA는 지미의 운전실력을 눈여겨보다가, 첩보원 데블린(제이슨 아이삭)의 개인 운전사로 발탁한다. 지미 통은 데블린을 백만장자에 바람둥이라고만 알고 있다. 착하고 순수한 지미 통은 금방 데블린과 가까워지지만 지켜야 할 사항이 하나 있다. 데블린의 턱시도만은 절대로 입어서 안 된다는 것. 어느 날 외식을 나갔다가 폭탄 공격을 받고 데블린이 큰 부상을 입는다. 의식을 잃기 전 데블린이 남긴 말은 “턱시도를 입어”다. 데블린을 병원에 입원시키고 집에 돌아와 턱시도를 입자, 턱시도는 지미의 몸을 마음대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CSA가 만들어낸 최신 병기 턱시도는 그것을 입은 사람의 육체를 변화시켜 특공무술에서 라틴댄스와 벽타기까지 몸으로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가능하게 만들어준다. 지미는 데블린의 부탁대로 턱시도를 입고 CSA 신참 요원인 델 블레인(제니퍼 러브 휴이트)을 만난다. 지미를 데블린이라고 생각한 델 블레인은 지미와 함께 세계의 생수시장을 장악하려는 배닝의 음모를 파헤친다.
■ Review
성룡은 이제 명실상부한 세계의 스타다. <턱시도>에서 성룡은 단독 주연이다. <러시아워>에서는 크리스 터커가, <샹하이눈>에서는 오언 윌슨이 함께였다. 할리우드는 성룡 단독으로 영화를 이끌어가기에는 약간 무리가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게다가 두 영화 모두 성룡의 캐릭터는 서구세계를 찾아온 동양의 이방인이다. 그는 영어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서구의 일상적인 관습도 알지 못한다. 성룡의 액션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하고, 이방인 성룡이 서구사회에서 벌이는 문화적 충돌에 파트너의 유머와 개그를 한데 뭉쳐놓아야만 안전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턱시도>는 다르다. 이방인 성룡을 인도하고 때로는 사기치는 파트너가 없어도, 웃음과 즐거움이 충만하다. 성룡이 몸을 날리지 않을 때도 영화의 긴장감은 사라지지 않는다. 게다가 <턱시도>는 성룡과 백인 여성의 사랑까지 이루어준다, 비록 키스신은 없지만. 이제 성룡은 동양의 액션배우가 아니라, 버스터 키튼 이래 ‘육체’를 가장 잘 활용하는 세계 최고의 코미디언으로 인정받은 것이다.
최근 가진 인터뷰에서 성룡은 “성룡이라 부르지 말고, 재키 찬이라고 불러달라”고 했다. 아시아에서 통용되는 성룡을 뛰어넘어, 전세계인이 환호하는 재키 찬으로 자신을 받아들여달라는 의미다. 활기왕성한 <턱시도>는 성룡의 정중한 요구를 뒷받침한다. <턱시도>에서 성룡은 동양에서 온 형사나 경호원이 아니다. 그냥 평범한 택시 운전사다. 턱시도를 입기 전까지, 성룡은 그냥 자그마한 동양인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충분히 우습다. 성룡이 화끈하게 택시를 몰고 뉴욕의 거리를 누비거나, 여자 앞에서 쩔쩔매는 광경을 보고 있으면 성룡이 단지 무술인이 아니라 재기넘치는 배우라는 것을 다시 한번 실감하게 된다. <턱시도>는 성룡의 유머와 재능이 단지 진기한 액션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었음을 새삼 느끼게 해준다.
스티븐 스필버그가 처음 성룡에게 제안한 것은 ‘가족영화’였다. 현재 미국 TV에 성룡을 주인공으로 한 아동용 프로그램이 방영되는 것처럼, 성룡은 아이들에게도 친숙한 무공해 스타다. 성룡은 동서는 물론 남녀노소 어떤 장벽도 없이 받아들여지는 ‘깨끗한’ 액션스타로 자리잡은 것이다. <턱시도>는 순진하면서도 고지식한 성룡의 캐릭터 때문에 늘 미소짓게 만든다. 서구인이 바라보는 중년의 성룡은 아이들보다도 순수하고, 초롱초롱한 것 같다. 천진무구한 ‘재키 찬’은 어떤 짓을 해도 가식없는 웃음을 안겨주고, 한없이 즐거운 마음으로 영화를 볼 수 있게 도와준다. <턱시도>는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성룡 특유의 아크로바틱한 액션에만 포커스를 맞춘 영화가 아니라, 성룡의 액션활극을 첨단의 특수효과와 결합시키고 그의 유머감각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가족영화다.
<턱시도>의 즐거움 또 하나는 제니퍼 러브 휴이트의 상큼한 연기다. <나는 네가 지난 여름 한 일을 알고 있다>로 데뷔하며 스크림 퀸의 면모를 과시했던 제니퍼 러브 휴이트는 <하트브레이커스>에서 엄마와 함께 사기행각을 벌이는 도발적인 처녀로 변신했다. <턱시도>는 <하트브레이커스>의 제니퍼 러브 휴이트에서 심각함을 빼고, 액션과 과장으로 부풀린 캐릭터다. 언제나 자신있고 쾌활한 듯하지만, 실은 마음도 약하고 겁도 많은 소녀. 악당들을 만나 이소룡 흉내를 내며 소리를 지르고 이리저리 발을 뻗는 제니퍼 러브 휴이트의 발랄함은 <턱시도>를 더욱 상쾌하게 만들어준다. 사랑에까지 이르는 성룡과 제니퍼 러브 휴이트의 진기한 어울림은 사람의 몸에 옷을 맞춰주는 ‘턱시도’처럼 딱 들어맞는다.
액션이 약간 줄어들었다고는 하지만, <턱시도>가 보여주는 성룡의 매력은 눈여겨볼 만하다. 점점 나이가 들어가는 성룡의 액션이 조금씩 무거워지고, 느려질 것은 당연지사. <턱시도>는 액션을 줄이고도 성룡의 존재감이 전혀 줄어들지 않았음을 증명한다. <턱시도>는 성룡의 미래가 여전히 장밋빛임을 보여주는 시금석이다. 김봉석/ 영화평론가 lotusid@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