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개봉한 <마리 이야기> 이후 한국 애니메이션의 최고 기대작으로 꼽히는 <원더풀 데이즈>가 그 골격을 드러냈다. 15일 경기도 양수리 서울종합촬영소에서는 촬영에 사용된 미니어처들이 처음으로 공개됐다. 영상미니어처 체험전시관이라고 이름붙은 250평 규모의 공간에 전시된 10개의 모형들은 이 작품의 거대한 스케일을 가늠케 한다.
미니어처들은 마르 지역 주민들이 사는 배무덤, 오염물질을 에너지원으로 바꾸는 유전지대, 유기체 식물도시 에코반 등 <원더풀 데이즈>의 주요 배경들을 8분의 1에서 5백분의 1까지 축소해 놓은 것이다. 30여 명의 인원이 1년동안 꼬박 매달려 완성한 작품답게 그 정교함이 놀랍다.
미니어처가 배경이라면 등장인물도 모형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원더풀 데이즈>의 등장인물들은 2D 셀 애니메이션으로 그려졌다. 촬영된 미니어쳐들에 컴퓨터그래픽이 덧입혀지고 그 위에 인물들의 움직임이 얹혀진다. 이 작품은 2D와 3D, 미니어쳐가 복합적으로 합성된 한국 최초의, 그리고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기 힘든 애니메이션이다. 이렇게 복잡한 제작방식은 “미국이나 일본같은 애니메이션 선진국들이 내놓는 작품과는 다른 차원의 애니메이션으로 국내 뿐 아니라 해외 시장을 놀래키겠다”는 김문생 감독의 야심에서 비롯된 모험이다.
이날 상영된 20분짜리 필름에서는 김 감독과 제작사인 틴하우스가 4년 넘게 들인 공의 결실을 엿볼 수 있었다. 거대한 배무덤이 무너지는 장면에서 미니어처들은 컴퓨터그래픽으로 표현할 수 없는 깊은 공간감과 생생한 질감을 전달하고, 컴퓨터그래픽으로 처리된 색채는 음울하면서도 환상적인 느낌을 자아낸다. 셀로 그려진 인물들은 보다 또렷한 존재감을 가지고 움직인다. 3중 촬영과 복잡한 합성을 위해 제작진은 소니사가 특수제작한 디지털 카메라와 세계에서 두 대 밖에 없다는 특수 렌즈를 사용했다. 96년 기획 당시 20억원 정도를 예상하던 제작비는 126억원까지 올랐다. 지난해 말로 예정된 개봉날짜도 올 여름으로 그리고 내년 초로 거듭 미뤄졌다. 이러한 행보가 다소 불안해 보이기도 하지만 미국 메이저 스튜디오를 비롯한 해외시장의 주목으로 제작진은 수익에 자신감을 보인다.“99년 3분 짜리 데모 테입이 공개된 직후 대만과 수출계약이 이뤄졌고 일본의 대형배급사와도 계약 체결을 눈 앞에 두고 있다. 또한 유럽과 미국의 배급사들이 내한하는 등 각별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이경학 프로듀서는 작품이 완성되는 올 말쯤 해외배급이 눈에 띄는 성과를 올릴 것으로 기대했다.
<원더풀 데이즈>는 핵전쟁으로 폐허가 된 지구를 배경으로 젊은 남녀의 엇갈리는 사랑을 그렸다. 이날 공개된 비주얼들은 예사롭지 않은 작품의 탄생을 예감케 했다. 그러나 많은 애니메이션들이 허술한 이야기 구조 때문에 실패한 경험을 염두에 둔다면 마지막 찬사는 완성된 영화를 본 다음으로 조심스럽게 미뤄두어야 할 것같다.
미니어처 전시장은 일반 방문객을 위해 상설운영된다. 전시장 안의 입체영상관에서는 미니어처 제작과정과 <원더풀 라이프>의 일부 장면을 입체로 감상할 수 있다.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