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아시안게임으로 남북간에 따스한 바람이 불던 지난 11일 평양국제영화회관에선 한국 이두용 감독의 <아리랑> 상영회가 열렸다. 1926년 춘사 나운규의 동명작에 기반한 무성영화로, 남쪽에선 오는 25일 광주국제영화제의 개막식 야외상영작으로 첫공개되는 작품이다. 변사를 맡은 양택조씨와 함께 방북했던 시오리엔터테인먼트의 이철민 대표와 이두용 감독, 신우철 영화인협회 이사장은 14일 기자간담회에서 북한 아·태평화위원회의 리종혁 부위원장, 조찬구 문화성부상, 최창수 배우단 단장 등이 평양시민들과 상영회에 참석했다고 전했다.
사실 북한영화계의 변화는 올해에도 여러 곳에서 감지되어 왔다. 한국영화 <집으로…>가 북쪽에 전달됐다는 보도가 있었고, 지난 9월 평양국제영화제에는 영국·프랑스 등 서방영화가 최초로 상영됐다. 2년전 일본영화 상영에 이어 ‘비동맹·비주류’를 표방하는 영화제에 어느정도 변화가 생긴 셈이다.
이번 방북에서 양쪽은 남북 필름교류를 위한 직접연락 창구를 마련했다. 북한의 촬영장소 제공은 숙식문제까지 정해졌고 계약서 작성은 이달 안 마무리할 예정이다. 또 “서로의 사상을 침해하지 않는 한에서 남북 공동제작을 추진”하기로 했다. 하지만 이 대표는 “꼽아보니 먼저 해결할 일이 스무가지도 넘더라”며 “내년에 당장 북한촬영이나 본격적인 공동제작이 성사될 것이라는 기대는 무리”라 말했다. 북한 내부의 의사결정 구조도 아직은 복잡하거니와 “북한영화에 접근했다가 망하면 북한탓을 한 과거 교류경험으로 마음이 상해있기에” 세심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다만 이번엔 <아리랑>이라는 구체적 매개물이 있어 어느 때보다 기대가 쏠린다. 제작사는 11월 남북 동시개봉을 추진중이다.
전문가들은 북한영화계의 변화는 결국 북한 전체의 개방속도에 달려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한탕주의나 북한 고위층에 대한 ‘정치적’ 접근을 통해 당장의 성과를 기대하는 자세를 버린다면, 영화는 강력한 남북문화교류의 장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어떤 정치적 합의보다, 부산 앞바다의 만경봉호가 남북의 마음을 녹였듯 말이다.
김영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