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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씨,을 보고 `황성`의 추억에 젖다
2002-10-17

서울아,참 많이 변했구나

코믹물을 만들고 싶어하는 한국 영화감독들에게 20세기 초엽은 그리 좋은 시대 배경이 아니다. 코앞에 닥친 망국이 한국인 관객의 웃음에 어쩔 수 없이 그늘을 드리우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영화 속의 웃음 폭탄에 마냥 몸을 내맡기기가 뭔지 찜찜한 것이다. <YMCA야구단>의 김현석 감독도 아마 그것을 의식했을 터이다. ‘순국열사’의 유서 에피소드를 포함해 몇 군데 아슬아슬한 대목이 있지만, 이 영화의 익살은 한국인의 학습된 역사적 상상력을 맞대고 거스퇐않을 만큼 절제돼 있다. 작품이 ‘암행어사 출두’ 장면에서 ‘컷’되는 것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할 만하다. 어떤 식의 마무리도 관객 모두에게 흔쾌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연출자는 그 마무리를 관객 개개인의 상상력에 떠넘겨버린 것이다.

도입부의 흑백영상에 담긴 서울은, 다소 어설프게 재현된 영화 속 20세기 초 풍물들과 어우러져, 지난 한 세기 동안 서울이, 그리고 더 나아가 이 나라 전체가 얼마나 변했는지를 새삼 실감하게 한다. 그 변화의 폭은 ‘한성’ 또는 ‘황성’이라는 이름과 ‘서울’이라는 이름 사이의 거리에 얼추 대응할 것이다. 그 도정에는 또 ‘경성’이라는 이름도 있었다. 세계의 중요한 수도 가운데 서울만큼 지난 한 세기 동안 어지럽게 얼굴을 바꾼 도시를 달리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그것은 세계의 중요한 자연 언어 가운데 지난 한 세기 동안 한국어만큼 날쌔게 탈바꿈한 언어를 달리 힘들다는 사실과 나란하다. 역사의 숨결이 곳곳에 배어 있는 유럽의 수도들에 견주면, 서울은 역사가 거세된 도시다. 그것은 아쉬운 일이지만, 반드시 나쁜 일만은 아니다. 역사의 무게와 억압에서 풀려 있는 만큼, 더 역동적인 미래의 가능성을 품은 도시라는 뜻도 되니 말이다. 사실, 세계 어디를 가 보아도 서울만큼 24시간 팔팔 살아 있는 도시를 찾기는 어려울 것이다.

YMCA야구단의 정식 이름은 황성YMCA베쓰볼팀이다. 그 황성은 “황성 옛터에 밤이 되니 월색만 고요해”로 시작하는 이애리수의 노래 <황성의 적(跡)>의 그 황성(荒城)이 아니다. 이애리수의 황성은 개성이다. 이 노래의 작곡자 전수린은 개성 사람이었고, 노래를 만든 것도 개성에서다. 1930년에 <황성의 적>이 취입돼 출시되자마자, 총독부 경무국은 이 노래를 금지시키고 전수린과 작사자 왕평을 불러다 닦달을 했다고 한다. 당대의 많은 조선인들처럼, 총독부 경무국 나리들도 이 노래의 ‘황성’을 황성(皇城)으로 해석했기 때문이다. 바로 ‘황성YMCA潔껼셕웩그 황성 말이다.

황성이라는 서울의 옛 이름에서는 ‘황제나라의 도성’이라는 뜻에 어울리는 위엄이 흘러나오지 않는다. 이 도시를 고갱이로 삼은 대한제국이 그 웅장한 국값하는 실(實)을 지니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1897년 10월 고종이 황제 즉위식을 올리면서 출범해 1910년 8월 한일 병합조약이 강제로 체결되기까지 13년간 존속한 대한제국은 멸망을 눈앞에 두고 있던 조선왕조의 마지막 몸부림이었다. 그러나 이 요란스러운 신장개업은 황제라는 칭갈망하던 고종의 허영심을 채워주었을 뿐, 썩은 왕조의 다해 가는 운명을 구해낼 수 없었다. 고종은 무능하고 사려없는 군주였고, 그의 제국은 허울뿐인 제국이었다.

영화에 나오는 구식 전차가 나를 어린 시절로 데려갔다. 서울에서 전차가 사라진 게 언제더라 내가 초등학교를 졸업하기 얼마 전이라는 사실만 어렴풋하다. 30대에 유럽을 싸돌아다니면서 이따금 전차를 타면 어린 시절이 생각나곤 했다. 집이 있던 마포에서 ‘시내구경’을 하기 위해 전차를 타고 광화문이나 종로에까지 갔던 기억이. 그래도 광화문이나 종로는 서울의 다른 구역에 견주면 지난 한 세대 동안 덜 변한 것 같다. 마포에서 ‘시내’로 가고 오는 유소년기 전차 여행의 추억에는, 전차를 타고 1930년대 경성 사람들을 관찰하던 소설가 구보씨에 대한 상상이 포개지기도 했다.

영화 <YMCA야구단>의 에피소드들은 아마 거의 전부가 지어낸 것일 터이다. 그러나 그 에피소드들은 더러 의미심장한 사회사적 사변들을 건드리고 있다. 그 사변들 가운데 하나는 신분질서의 와해일 것이다. 양반 출신의 3루수와 그 집 머슴 출신의 1루수가 한 야구팀에서 어울리는 데서도 드러나듯 말이다. 이 두 사람의 신분 갈등은 YMCA야구단과 일본군 클럽팀 성남구락부와의 대결을 통해서 조금씩 풀려나 전형적인 앵글로색슨 종교단체에 소속된 조선인들이 전형적인 미국 스포츠 야구를 통해 ‘항일’을 실천하는 것이 얄궂기는 하다. 어쨌든 일본제국주의가 그 ‘근대화’의 몽둥이로 한국사회에 끼친 긍정적 영향이라는 것이 있다면, 거기에는 신분질서의 급속한 와해도 포함될 것이다. 실제로, 양반의 거드름과 착취에 넌더리를 냈을 하층 조선인들 상당수에게는 망국이라는 것이 오로지 천붕지괴로 다가오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하층민들 일부는 외세의 폭력에 휘둘려 몰락하는 일부 상층계급 사람들을 보며 고소해 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저러나 요즘 한국 프로야구, 천덕꾸러기가 다 됐다.고종석/ 자유기고가 aromachi@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