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tory
2000년 여름. 단발머리의 중년 남자가 부산의 해운대 바닷가를 한가로이 거닐고 있다. 오랜만에 한국을 찾은 가수 한대수다. 60년대 말 한국 모던 포크의 선구자이자 싱어송라이터였던 한대수. 어느덧 53살이 되어 한국으로 돌아온 그는, 태어난 곳이자 짧은 학창 시절을 보냈던 부산의 거리와 옛 지인들을 찾고, 새 음반 준비를 위해 묵는 서울의 방과 연습실을 오가며, 외로웠던 유년부터 유신 정권 아래 노래할 자유를 잃고 도미한 뒤 현재에 이른 여정을 돌아본다.■ Review
걸걸한 음색으로 “물 좀 주소”를 시원스레 내지르던 가객 한대수. 1968년, 기타 하나를 덜렁 메고 나타나 포크의 서정과 록의 생기를 품은 자작곡을 들려주던 그의 노래는, 유신 시대의 답답한 틀에 짓눌린 가슴들에 숨통을 틔워주는 청량제와 같았다. 의도든 아니었든 <물 좀 주소> <행복의 나라> 등 자유와 이상에 대한 갈망을 담은 노래들은 당대의 저항적인 송가로 불렸고, 젊은 날의 진솔한 사색, 블루스와 포크와 록을 넘나드는 음악의 에너지는 세대를 넘어서 위안을 주곤 했다.
<다큐멘터리 한대수>가 기획된 것도, 바로 그러한 음악의 힘 때문이다. 한양대 연극영화과 졸업작을 준비하던 장지욱 감독은, “시대를 떠나서 너무 좋은 음악”에 빠져 한대수의 음악인생을 되짚어 보자고 맘먹었고, 뜻밖에 그의 승낟을 받아 디지털카메라를 들었다. 과 선배인 이천우 감독과 힘을 모아 완성한 다큐멘터리는, 현재의 시점에서 한대수의 동선을 좇으며 30여년의 음악과 삶의 여정을 녹여내고자 고심한 결과다.고심의 흔적이 역력한 구성은, 한대수가 발표한 8장의 음반과 그에 어울리는 삶의 기억을 병치하는 구조. 늘 아귀가 들어맞는 것은 아니지만, 두 번째 부인 옥사나의 이야기에는 란 노래를, 어느덧 팔이 저리고 세월의 무게를 느끼는 모습에는 우는 표정의 <영원한 고독> 음반표지를 삽입하는 등 음악과 삶의 연결고리를 보여주고자 하는 노력이 엿보인다. 중간에 장이 바뀔 때마다 흑백 만화컷처럼 처리한 소개 화면은 사실적인 기록 영상에 깜찍한 쉼표를 주는 요소.
상영시간 80여분이라는 시간적 제약이 있다지만, 촬영기간과 제작비, 자료 부족 등 여러 여건상 지금의 한대수를 있게 한 데뷔 시절, 삶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미국생활을 단편적인 인터뷰와 약간의 사진으로 짐작할 수밖에 없다는 것은 못내 아쉽다. 한대수란 인물이 생소한 관객에게는 좀 불친절하게 느껴질지도. 하지만 끊임없이 자신의 현실에 발딛고 노래해온 인간 한대수와 그 음악의 의미를 현재형으로 되살려내고자 했던 젊은 감독들의 패기와 시도는 높이 살 만하다.
황혜림 기자 blauex@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