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영화들은 책의 흐름을 따라간다. 그러나 요새의 액션영화들은 게임의 흐름을 따라간다. 옛날 영화들은 만남 자체를 설명하지만 요새 영화들은 그것을 설명하지 않는다. 옛날 영화들은 만남이 어떻게 이루어졌고 어떻게 전개되었으며 결국에는 어떻게 끝났는지 주저리주저리 늘어놓는다. 그러나 요새의 영화들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게임에서 다음 싸움꾼을 만나듯, 만남은 우발적이다. 설명도 없다. 중요한 것은 그 만남/난관을 어떻게 타개하느냐일 뿐이다.
최신의 액션영화 <트리플X>는 그렇게 주인공이 우발적으로 만난 게임의 대상들을 어떻게 타개해 나가느냐를 영화화하고 있다. 이 영화는 최근에는 공식적인 스포츠의 일부가 된 여러 가지 극단적 레저/스포츠의 분야들을 액션과 연결시키고 있다. 스카이다이빙부터 바이크 라이드까지, 미국의 젊은이들이 열광하는, 하릴없이 목숨거는 그 허공의 스포츠들 말이다. 이 영화가 보여주는 건 딱 두 단어다. 하나는 스피드, 다음은 힘. 스피드와 힘이 실려 있는 음악은 무얼까? 당연히 하드코어 테크노 장르다.
전기 충격을 연상시키는 강력한 기타 프레이즈와 둔탁하면서도 일정하게 반복되는 테크노 리듬, 그리고 동물의 울부짖음에 가까운 노래 목소리를 기본으로 하고 있는 이 장르는 어떻게 생각하면 ‘쓰레기 같은’(filthy)이라는 영어 단어를 연상시킨다. 남자들의 이유없이 과격한 힘들이 찬양되는 대신 여자들은 그 힘을 찬양하면서 박수를 치는 존재들이거나 그 힘이 또다시 목적의식 없이 쓰이는 밤의 쾌락의 대상들일 뿐이다. 하드코어 테크노는 그런 상황 자체를 찬양한다. 서구의 젊은이들이 향유하고 있는 문화들은 하나같이 양면성을 지니고 있는데, 이 ‘하드코어 테크노’ 역시 마찬가지이다. 보통의 록음악에서는 잘 들리지 않던 강력한 테크노적 노이즈와 기계적인 드럼비트를 도입했다는 측면에서는 분명히 기존의 록 사운드를 넘어서는 진보적인 일면이 있는 반면, 남성의 전유물이나 마찬가지인 헤비메탈의 사고방식을 그대로 답습한다는 측면에서는 굉장히 보수적이거나 과거지향적이라고 이야기할 수밖에 없다. ‘x게임’ 역시 마찬가지이다. 한편으로는 젊은이들의 자연스러운 하위문화의 한 장르로 자리매김되고 그래서 그 하위문화를 ‘위험한’ 것으로 보는 기성세대의 관점을 비웃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여전히 그 지긋지긋한 ‘남자다움’을 매개로 성립되어 잇다.
그러나 어쨌거나 중요한 것은, 최소한 이 영화의 음악으로 미루어 본다면, 지금의 시대는 이 하드코어 테크노의 비인간적인 굉음을 쾌락의 일부분으로 수용하고 있는 세대라는 점이다. 그것만큼은 분명하다. 조금 일반적으로, 그리고 낭만적으로 말한다면 역시 쾌락은 죽음의 힘과 맞대어져 있다.
O.S.T가 비교적 충실하게 선보이고 있는 것은 이런 음악을 하는 친구들의 목록이다. 이런 하드코어 테크노 록의 유럽에서의 태두라 할 수 있는 람슈타인이 O.S.T의 첫 트랙을 열고 있다. 댈러스 출신의 4인조 드라우닝 풀이 마치 자기 의무인 양 다음 트랙을 맡고 있다. 이 거친 사내들 와중에서 모비와 오비탈도 각각 한 트랙씩 자기 몫을 다한다. 어쨌거나 강력하고, 그 스피드는 못 말린다. 성기완/ 대중음악평론가 creole@hite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