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칸 뷰티>로 일약 최고급의 감독 대열에 오른 샘 멘데스 감독의 후속작 <로드 투 퍼디션>은 갱스터 무비이다. <아메리칸 뷰티>는 할리우드치고는 비교적 진지하게 미국인의 삶을 바라본 역작이었다. 영국 태생이라서 그랬나, 그의 시선은 냉정하다. 샘 멘데스는 이 데뷔작으로 아카데미상을 탔다. 너무 미리 찾아온 명성을 등에 업고 만든 그의 두 번째 작품은 여전히 신인감독인 그에게는 과할 정도의 버젯과 캐스팅이다. 톰 행크스, 폴 뉴먼, 주드 로, 이렇게 세 명배우가 그의 영화를 위해 연기한다. 그가 이번에 마주한 시대는 미국 역사상 최악의 시대, 대공황의 시대이다. 감독은 청부살인업자인 아버지와 그의 아들 사이의 관계를 중심으로, 그 최악의 시대를 거칠게 살아온 미국 사람들의 ‘거울’을 들여다보고자 한다. 감독은 오히려, 그 최악의 시대를 통해 미국의 지배적인 이데올로기를 확인한다. 그것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은 또다시 냉정하다.
음악은 <아메리칸 뷰티>에서도 스코어를 담당했던 토머스 뉴먼이 담당했다. 이번 영화의 그의 사운드는 다른 어떤 영화에서도 보여준 적이 없었던 암울함을 담고 있다. O.S.T를 여는 테마곡은 거의 1분이 넘도록 굉장히 암울한 피아니시모로 암시적인 무언가를 들려줄 뿐이다. ‘지옥의 길’을 여는 테마인가. 그 이후로도 음악은 내내 어둡고 느리며 둔중하다. 때로는 어두운 앰비언트 사운드를 방불케 하는 세기말적인 우울을 담고 있다. 특히 팀파니와 전자악기들이 어울려내는 소리로 보이는 저음부의 ‘우르릉’거리는 소리는 불안하고 둔한, 미래에 대한 어떤 예감들을 품고 있다. 좀처럼 뚜렷한 멜로디로 올라오지 않고 서성거리는 스트링 선율과 비오는 날의 뱃고동이나 기차 경적처럼 약간은 기분 나쁘게 울리는 브라스를 중심으로 하고 있지만 최신의 전자악기가 내는 소음도 적절히 사용하고 있다.
외롭고 쓸쓸한 피아노로 시작하여 약간은 감상적인 리듬을 타고 스트링과 어울리며 변주되는 슬픈 곡들도 있다. 어디선가 부르는 듯한, 휘파람 소리 비슷한 신시사이저 소리. 아마도 ‘죽음’이 부르는 소리라고 생각하며 음표를 그려나갔을 법한 그런 소리. 수갑이나 사슬의 금속성들과 하이톤의 소프라노 색소폰이 어울려 빠져가날 수 없는 운명을 빠져나가고 싶어하는 사람의 몸부림을 음악적으로 표현한다. 프리 재즈의 그림자를 느끼게 하는 불협의, 갈라진 배음들이 비비 꼬며 몸을 트는 리드악기의 사용으로 그는 할리우드의 문법에 충실하면서도 거기에 자유롭고 과감하게 새로운 음악적 언어들을 끼워넣는다. 한편으로는 자유자재인 그의 음악실력을 그런 데서 확인하게 되기도 하는데, 다른 한편으로는 역시 그의 안목이나 관점이 상당히 진보적이라는 생각도 하게 한다. 실력만 있다고 해서 그렇게 되는 것은 절대 아니다.
하고 싶은 마음이 있어야 하는 건데, 토머스 뉴먼은 충분히 그렇게 할 야심을 품고 있는 사람이다. <페이 잇 포워드>나 <아메리칸 뷰티>를 소개하면서도 설명했지만, 그는 상당히 지적이다. 주도면밀하게 테마를 정한 뒤 그 테마의 실타래로부터 풀려나오는 다음 대목들이 연쇄성을 가지도록 만들고 있다. 그래서 그의 음악은 서사성을 지닌다. 반추하고 되돌아가면서 앞으로 나가는 일이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성기완/ 대중음악평론가 creole@hite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