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억원 프로젝트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 흥행 참패, 그 원인과 파장을 짚는다
우려했던 일이 현실로 나타났다. 장선우 감독의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이하 <성소>)이 흥행에 크게 참패하며, 영화계에 적지 않은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당초 한국영화 사상 최대 규모인 총제작비 110억원(순제작비 93억원) 투자, 3년에 걸친 제작, 장선우 감독이 만드는 최초의 액션판타지영화, ‘TTL소녀’ 임은경의 첫 영화 출연 등으로 화제를 모았던 <성소>는 추석 시즌인 지난 9월13일 개봉했으나, 27일까지 전국에서 15만명 남짓한 관객을 불러들이는 초라한 기록을 남기고 극장가에서 때이른 퇴장을 준비하고 있다.앞서 말한 다양한 화젯거리와 20억원에 가까운 비용을 들인 마케팅 활동을 고려하면, <성소>의 흥행 실패는 충격적이기까지 하다. 사실 이 영화가 제작비를 보전하는 정도의 성공을 거둘 것이라고 예측한 충무로 관계자도 없었지만, 이렇게까지 ‘망하는’ 정도의 성적을 기록하리라는 전망을 한 이도 많지 않았다. 관객의 흥미를 자극하지 못하거나 취향에 어긋나는 영화가 시장에서 실패하는 것이야 당연하지만, <성소>의 경우는 일반적인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수준이기 때문에 파장은 확산되고 있다.가상현실의 주제, 키치풍의 비주얼 관객에게 어필 못해<성소>가 흥행에 실패한 원인은 다양하게 제시되고 있다. 가장 먼저 제기되는 원인은 영화 자체가 관객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는 것. 게임, 가상현실이라는 주제가 애초 이 영화가 구상되던 3년 전과는 달리 사회적인 이슈가 되지 못했고, <매트릭스> 등 비슷한 주제를 다룬 영화들이 이미 만들어졌다는 얘기다. 또 장선우 감독이 의도했던 키치풍 비주얼도 관객에게 큰 호소력을 얻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영화평론가 이효인씨는 “장선우 감독은 사회적인 문제를 주제로 할 때는 나름의 흥행코드를 알고 있었던 것 같은데, 급작스레 장르를 바꾸면서 액션이나 판타지에 대한 감각을 잘 잡지 못한 것 같다. 자기가 익숙지 않은데다 잘 모르는 분야의 영화를 만들다보니 제작비도 올라가고 시간도 오래 걸렸던 게 아닌가 싶다”고 말한다. 적절한 개봉시기를 놓쳤다는 점도 또 하나의 실패 요인으로 꼽힌다. 거듭된 시행착오 탓에 애초 지난해 말로 예정됐던 이 영화의 개봉은 올해 여름방학으로 연기됐다가 결국 추석 시즌으로 밀리게 됐다. 이에 따라 주연인 임은경의 신비스런 이미지도 차츰 부식됐으며, 영화도 식상한 느낌을 주게 됐다는 것. 하지만 무엇보다 이 영화의 흥행전선에서 최대의 ‘마이너스 알파’로 작용한 요소는 110억원의 제작비였다. 이처럼 많은 비용이 들다보니 투자사와 제작사 입장에서는 ‘대박’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게 됐고, 자연 이 영화가 담고 있는 내용적 무게와 깊이보다는 액션, 게임, 판타지 등의 요소와 100억원이라는 물량을 앞에 내세울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빠져들었다. “만약 이 영화에 50억원만 들었어도 ‘장선우 감독의 구도영화’라는 식으로 관객에게 알렸을 것”이라는 메인 투자사 튜브엔터테인먼트 관계자의 이야기는 이를 반영한다. 결국 영화를 본 관객은 “100억원이 넘는 돈을 들여 이렇게 어렵고 답답한 이야기를 담아야 했냐?”라거나 “액션판타지영화라는 홍보문구에 완전히 속았다”는 불평을 쏟아놓게 됐다는 설명이다. 결국 <성소>는 장선우 감독의 기존 이미지와 ‘오락적’이라는 홍보문구, 키치적 영상과 110억원의 제작비, <금강경>의 메시지와 긴장감이 다소 떨어지는 가상현실이나 게임이라는 소재 등이 겉돌면서 흥행 실패라는 결과로 치달은 인상이다.튜브와 CJ의 타격 커<성소>의 흥행 실패로 가장 큰 타격을 입은 쪽은 당연히 투자사들이다. 전국 15만명선을 동원한 이 영화로 투자사와 제작사가 거둬들일 극장 부금은 5억원이 채 안 된다. 여기에 비디오 판권과 TV판권 등을 더해도 10억원 남짓한 수익만을 기록할 것으로 보인다. 100억원에 달하는 손실분 중 CJ엔터테인먼트가 튜브에 마케팅비로 대여한 10억원을 제외한 90여억원, 즉 영화에 대한 투자자금 전액이 잠식되는 것.이중에서도 상당 부분의 투자를 담당했고 제작과정을 관리한 튜브엔터테인먼트의 충격이 가장 클 것으로 보인다. 이 영화를 제작하면서 큰 타격을 받았지만, <집으로…>의 성공으로 재기의 발돋움을 하던 튜브는 최근 각종 어음 만기가 돌아와 ‘부도위기설’에 휘말리기도 했다. 후반작업 중인 <튜브> <내츄럴시티>와 촬영 중인 <데우스 마키나> 등의 제작비를 조달해야 하는 튜브로서는 <성소>의 실패가 악재로 작용할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김승범 튜브 대표는 “자금이나 이미지면에서 손해를 본 것이 사실이지만, 일단 큰불은 껐다. 우리로선 이 영화를 제작하면서 제작에 관한 상당한 노하우를 얻었기 때문에 투자자들과의 협상에 악영향을 끼치진 않을 것”이라고 이야기한다.이 영화에 함께 투자를 했고 배급을 맡았던 CJ도 상당한 손실을 입었다. CJ의 한 관계자는 “<성소>로 인한 손실은 18억원 정도지만, 자금에는 큰 문제가 없다. 으로 회사의 이미지를 반전해야 하는 게 지금 가장 중요한 일”이라며, 오히려 평판의 하락을 걱정한다. <성소>의 손실에도 불구하고 CJ는 한국영화의 주요 투자자로서의 역할을 지속할 계획이다. 이 관계자는 “큰 예산이 들어가는 영화보다는 알찬 영화를 중심으로 투자할 것이며, 명필름, 영화사 봄, 싸이더스, 나비픽처스의 ‘4각편대’와 호흡이 맞는 다른 영화사들과 계속 작업할 것”이라고 설명했다.충무로가 공유하는 실패 되어야 한편 “만약 <성소>가 흥행에 실패하면 한국영화계는 커다란 자금난을 맞을 것”이라는 ‘충무로 위기설’은 아직 현실로 드러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한 관계자는 “<성소>로 인한 충격이 크지 않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연초부터 한국영화의 기대작이 잇따라 실패하면서 한국영화에 대한 ‘묻지마 투자’ 열기가 다소 식어 있는 탓”이라고 해석한다. 물론 50억원 이상의 제작비가 들어가는 한국영화에 대한 투자가 <성소>를 계기로 더욱 어려워질 것이란 점만큼은 확실해 보인다. <성소>의 실패를 놓고 ‘한국형 블록버스터의 실패’나 ‘한국식 마구잡이 영화 만들기의 전형’이라고 비난하는 것은 매우 쉬운 일이다. 이 영화로 인해 한국영화에 대한 투자가 위축된다거나 100억원이라는 엄청난 자금이 공중으로 사라졌다는 비판은 어느 정도 타당하다. 하지만 <성소>는 한국영화계의 현주소를 그대로 비추는 거울이기도 하다. 어찌보면 이 영화는 90년대 중반 들어 급속하게 성장한 한국영화의 ‘난개발’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상징적인 작품일지도 모른다. 이 영화에서 나타난 온갖 문제점을 한 영화사나 몇몇 제작진이 일으킨 ‘대형사고’로 환원할 순 없을 것이다. 결국 <성소>가 기획, 투자, 프리 프로덕션 등의 과정에서 일으킨 온갖 문제를 현단계의 충무로가 함께 공유하고, 합리적인 시스템을 통해 극복해야 한다는 점이야말로 ‘사라진 100억원’이 남긴 교훈일 것이다.문석 ssoony@hani.co.kr▶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 흥행 실패 진단 [2] - 장선우 감독의 반응▶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 흥행 실패 진단 [3] - 제작비 결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