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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마른 삶의 30·40대 짧은 여행 <낙타(들)>
2002-09-27

서해안의 작은 포구 월곶에 40대 남자와 30대 여자가 도착한다. 김포공항에서 기다리던 여자를 태우고 왔거늘, 제대로 된 통성명은 오늘이 처음인 듯 하다. 이들은 횟집에서도 똑바로 시선을 맞추지 않은 채 어색한 대화를 이어나간다. 모텔방에서 벌거벗은 몸으로 침대에 나란히 누워서도 그 어색함은 달라지지 않는다.

박기용 감독의 <낙타(들)>는 사회적으론 흔히 ‘불륜’이라 불릴만한 두 사람의 1박 여행을 담담하게 관찰한다. 재수를 했고, 아버지 직업이 같고, 바닷가에서 자랐다는 공통점들을 발견하고 “그러고 보니 우리 참 비슷한 게 많네요” 조심스럽게 얘기하지만, 그게 중요한 건 아니다. 주인공들은 지쳐있다. “무거운 것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싶어 30살이 되는 게 기뻤”던 이들은 여전히 삶에 지쳐 ‘일탈’을 벌인다. 그것은 그저 지치고 고단한 마음을 잠시 누일 짧은 여행이다. “자주 연락드려도 될까요” 물어도 여자는 말없이 그릇만 내려다볼 뿐이다.

<모텔 선인장>(1997)에서 모텔방이라는 한정된 공간 안에서 3쌍의 남녀의 사랑과 갈등을 실험적인 영상에 담았던 박 감독은 <낙타(들)>에선 흑백의 디지털 카메라를 들었다. 극적인 드라마도 없고 건조할 정도로 정적이지만, 영화를 보다보면 불안한 30, 40대의 삶을 어루만지는 시선이 느껴진다. 낙타는 극단적 환경의 사막에서도 살아갈 수 있는 동물이지만 “항상 촉촉하게 눈이 젖어있다”고 한다. 27일 개봉. ]

김영희 기자 dor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