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에서 배운 것들을 젊은 연극영화 학도들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내년 3월 문을 여는 계명대 연극영화과 초빙교수로 부임한 오순택씨는 40년 가까운 미국 할리우드 생활에서 배운 모든 것을 한국땅에 모두 쏟아부을 작정이다.
언뜻 머릿속에 떠올리기 쉽지 않은 인물이지만 007 시리즈를 즐겨 본 사람이라면 (1975년작)에서 주인공 로저 무어와 짝을 이룬 홍콩주재 영국 정보원역을 맡은 오씨를 기억할 것이다. 그만큼 한국에서보다는 미국에서 더 유명한 오씨는 대학 졸업 2년 뒤인 지난 59년 오로지 영화를 공부하기 위해 혈혈단신으로 가방 하나 들고 미국으로 건너가 UCLA 대학과 뉴욕 배우전문학교를 거쳐 UCLA 대학원에서 연기분야 최고학위인 연기 및 극작 석사학위(MFA)를 받고 연극 무대에 섰다.
지난 65년 브로드웨이 상연 연극 「라쇼몽」을 로스앤젤레스에서 공연하면서 배우생활을 시작한 그는 지난 30여년간 연극과 뮤지컬(태평양 서곡 등)은 물론 TV 시리즈물(<맥가이버> 등), 영화(007 시리즈 등) 등 모두 200여편의 작품에 출연해 주목받는 동양인 배우라는 명성을 얻게 됐다. 최근에는 월트디즈니 만화인 <뮬란>에서 주인공 뮬란의 아버지 목소리를 연기해 <아버지 목소리의 전형>이라는 영화계의 찬사를 받기도 했다.
‘할리우드에서 동양인 배우로 생활한다는 것은 산에서 고래를 찾고 바다에서 호랑이를 찾는 일과도 같습니다’ 반평생을 영화의 본고장이라는 할리우드에서 지낸 그도 냉엄한 인종차별의 벽은 어쩔 수 없었다고 털어놓았다. 많이 배워서 한국으로 돌아가겠다고 다짐하며 조국을 떠나왔지만 조연에 만족해야하는 할리우드 생활은 그를 잠시 좌절케 하기도 했다. 그러나 LA를 중심으로 주연 연극배우로 당당히 활동하면서 배우로서의 명성을 쌓아나갔다. 예명 없이 Soon-Tek Oh(오순택) 이름 그대로 살아가고 있는 그는 최근 한국인을 비하하는 내용이 담긴 영화 <폴링 다운>의 출연 제의를 거절하는 등 한국인 배우의 자존심을 지키며 살고 있다.
지난 73년 서울예술전문대학과 서라벌예대 등에서 1년여간 강의를 맡은 데다 지난해에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초빙교수로 임용돼 강의를 하는 등 대학 강단에 서는 일이 낯설지만은 않다. ‘진정한 연기란 단순한 일상 생활의 모방이 아니라 충실한 삶 자체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기능 이전에 예술적 품성을 갖춘 진정한 예술인을 만드는 것이 저의 꿈입니다’ 연고가 없는 대구에서의 생활이 기대가 된다는 오씨는 문화의 불모지에 작은 꽃씨를 뿌린다는 마음으로 강단에 설 각오지만 ‘배우에게 나이는 없다’며 나이 밝히기를 극구 거절했다.
(대구=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