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돌멩이(가능하면 네모 반듯한 돌멩이가 좋다)를 이용해 다른 돌멩이를 넘어트린다. 던지고, 한발에 올리고, 무릎과 엉덩이에 끼고, 어깨와 머리에다 올리고 돌멩이를 넘어트린다. 이 놀이는 비석치기나 망까기라고 불렸고, 한 단계마다 던지기, 도둑발, 토끼뜀, 똥꼬, 훈장, 떡장수, 장님이라는 명칭이 있었다. 마지막 단계, 눈을 감고 돌을 던져 상대편 돌을 맞추려는 순간 돌이 튀어 옆에 있는 어른들의 다리에 맞는다. “아저씨들은 누구세요?” 질문한 아이와 똑같이 생긴 어른이 웃으며 “우리? 하하 그냥 구경한 거야”라며 말을 흐린다. 20년을 거슬러올라간 골목길에서 즐겁게 노는 장면을 지켜보던 나는 아이들이 나를 알아보는 바람에 화들짝 놀라 길을 떠났다.
어린 시절 골목과 함께 TV는 가장 강력한 엔터테인먼트의 공급처였다. 우리는 TV에서 본 외화의 아이템을 꺼내 골목버전으로 바꾸는 창조적 적응력을 갖고 있었다. 고전에 속하는 <600만불의 사나이>나 <두얼굴의 사나이> <원더우먼>은 물론 화려한 매커닉이 등장하는 <전격Z작전>이나 <에어울프>, 그리고 문화적 충격을 주었던 문제의 작품 <V>까지. 우리는 TV에서 방영한 외화를 즐겼고, 그 외화를 다시 새롭게 해석했다.
전통적인 공동체 놀이와 최신 엔터테인먼트까지를 한꺼번에 녹여내던 골목길은 우리의 주거문화가 대단위 아파트로 바뀌면서 사라져버렸다. 골목이 사라지자 어린이들의 삶을 다른 형태가 되어버렸다. 그리고 골목에서 놀았던 우리는 추억을 잃어버렸다. 시간이 흐른 뒤, 온라인이라는 새로운 골목길을 발견했다. 우리는 그곳에 함께하는 놀이를 복원했고, 추억의 편린들을 담아냈다. 추억을 먹고 자란 명랑만화를 통해 독자를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두명의 인터넷 만화가를 소개한다.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골목
대학졸업 뒤 400군데나 이력서를 보낸 경험이 있는 강도영. 대학 1학년 때 박재동의 ‘한겨레그림판’을 보고 만화가가 되기로 결심한 뒤 프리랜서 만화가로 살고 있다. 다양한 매체에 기고하는 그의 작품은 물론 자신의 이야기가 담긴 여러 작품이 여기(http://www.kangfull.com)에 있다. 역시 대학졸업 뒤 다수의 만화단행본 작업에 참여했고, 다양한 만화 일러스트를 그린 박철권의 만화는 여기(http://www.toons.pe.kr)에 있다.
이들 두 젊은 작가는 어린 시절의 경험을 자산으로 만화를 그린다. 골목의 놀이와 TV외화, 따뜻한 가족의 정에 대한 기억들을 끄집어내 어린 시절을 온통 사로잡았던 ‘명랑만화’의 문법으로 만화를 끌고 간다. 그래서 이들 만화는 ‘명랑만화’다. 80년대 후반, 그토록 견고했던 명랑만화의 숲이 사라지고 사막만 남은 줄 알았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명랑만화는 삭막한 사막의 지하에서 오염을 걸러내며 생명수를 만들어내고 있었던 것이다. 조그맣게 솟아나는 맑은 물에 자란 명랑만화의 새로운 나무가 바로 이들의 만화다.
명랑만화의 특징은 일상성에 있다. 강도영의 만화에는 코를 후비는 장면이 아무렇지 않게 나온다. 상황을 비틀어버리는 부조리한 만화라면, 코를 후비다가 코피를 쏟거나 거대한 코딱지의 산을 만드는 등 분비물을 활용한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만들 것이다. 그러나 명랑만화는 일상에서 우리가 코를 파는 그대로를 만화에 그려낸다. 길창덕의 <꺼벙이>에 꺼벙이가 꺼실이와 자작 보드게임을 하는데, 그 공이 바로 코딱지였던 것처럼 말이다.
늘 코를 후비는 강도영 만화의 캐릭터처럼, 나도 그렇게 코를 후비고 살고 있다. 그래. 이 만화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구나. 명랑만화가 막연하게 웃기는 만화가 아닌 점이 바로 이런 부분이다. 코를 후비는 장면이 자주 등장하는 일상의 명랑만화와 구토와 배설물이 자주 등장하는 엽기적 부조리 만화는 분명히 장르적으로 다른 지향을 보여준다. 명랑만화에서 볼 수 있는 ‘코 후비기 장면’은 그야말로 일상이고, 부조리 만화에서 등장하는 온갖 장면은 일상을 환기하는 비일상성이다. 강도영의 만화는 대부분 일상성에 기초한다. 귀가 잘 안 들려 생기는 해프닝들은 일상적이다. 70년대 우리가 즐겨보았던 TV외화에 대한 기억도 일상성이다. 심지어 홈페이지 게시판에 독자들이 올린 소재조차도 일상적인 경험이 확인되어야지 만화로 태어난다. 이것은 박철권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가 소개하는 놀이문화는 모조리 일상의 경험에서 나온 것이다.
이러한 일상성은 친근함을 만들고, 친근함은 잔잔한 웃음을 만들어낸다. 다시 기억을 20년 전으로 되돌리자. 그 시절, 여러 잡지와 어린이신문 등에 연재되던 명랑만화들은 대부분 일상성의 법칙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어처구니없는 탐험(<신판 보물섬> <두심이 표류기>)이나 신기한 물건(<도깨비 감투>), 시간여행(<요술항아리> <원시소년 똘비>)이라 하더라도 그 모든 일들은 일상성의 강력한 자장 속에서 존재한다.
서른 언저리, 공감의 주파수
일상에서 발견한 웃음은 주파수가 동일하게 맞추어질 때 수백배로 증폭되는데, 박철권과 강도영의 만화가 만들어내는 주파수는 20대 후반에서 30대의 그것과 정확히 일치한다. 결혼식 축가를 부탁받고 한동준의 <사랑의 서약>을 열심히 연습했지만 실전에서는 단지 ‘그토록’이라는 단어로 시작한다는 이유로 최진희의 <사랑의 미로>를 불러버린 결혼식 축가 실수담은 하객의 날카로운 눈매와 난처한 당사자의 얼굴이 이어지며 자연스러운 웃음을 끌어낸다. 이런 유의 실수담은 역시 우리나라에서 패키지화된 결혼식에 참여해본 적이 있는 동일한 세대의 주파수와 일치한다.
무엇보다도 이 두 작가들은 하루하루 살아간 자신의 일상도 만화를 통해 꺼내놓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박철권은 만화를 이용해 일기를 쓴다. 강도영은 자신이 경험한 사건과 자신의 생각을 만화에 담아낸다. 관심의 영역도 매우 다양해, 미군의 여중생살해사건과 같은 사회문제를 자연스럽게 담아내기도 한다. 이러한 넓은 오지랖은 좁은 눈으로 자기 세계에 갇혀 사는 주류 만화가들과 변별되는 이들의 들풀과도 같은 생명력의 원천이다. 마지막으로 이 말은 꼭 해야겠다. 이들 만화는 정말 웃긴다.박인하/ 만화평론가 enterani@yaho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