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방송의 간판 시사프로그램 <추적 60분>(토 밤 10시)이 무기력증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개편때 폐지한다는 이야기도 나돈다. `대표 공영방송' 한국방송의 현재를 상징으로 보여주고 있다. <추적 60분>은 한국방송의 역사나 현실적인 무게로 볼 때 단순한 하나의 프로그램만은 아니다.
한때 <추적 60분>은 사회고발을 위한 심층취재 프로그램의 대명사였다. 최근 <추적 60분>의 가장 큰 문제는 주한미군이나 권력부패, 소수자 인권 등 우리 사회의 뜨거운 이슈나 다수 시민의 관심사항을 외면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 대신 스페인 월드컵, 주름살 없는 사회, 고래잡이, 라이따이한 등 상대적으로 가벼운 주제를 아주 ‘공정하게’ 다루고 있다.
이따금씩 노동자나 권력핵심의 문제를 다루기도 하지만 전반적으로 자기 목소리가 없고 형식적 객관주의나 양시양비의 당위론에 빠져 있다. 강자와 약자의 갈등사안에 대한 문제의식 없는 객관주의는 사실상 무책임한 보신주의에 가깝다. 장기파업이나 쓰레기소각장 문제를 다루면서 ‘서로 양보하여 명랑사회 이룩하자’는 식의 무의미한 결론을 제시하는 것은 곤란하다. 시사프로그램에서 자기 주장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강변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사안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명확하게 드러낼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다. 형식적 중립은 기득권에 대한 ‘비겁한’ 옹호이기 때문이다.
시사고발이나 심층보도 프로그램의 경우 제작이 어렵고 권력집단의 압력을 받거나 갖가지 소송에 휘말릴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최고경영자의 관심과 뒷받침이 필요하다. 경영진이 자율보장과 지원이 아니라 간섭과 책임추궁을 일삼게 되면 시사프로그램은 말라죽을 가능성이 크다. 그런 면에서 <추적 60분>의 무기력증은 경영진의 간섭과 핍박, 이에 힘없이 굴복한 제작진의 합작품이 아닌가 생각된다.
현재 한국방송에는 <일요스페셜> <시사포커스> <취재파일4321> 등 <추적 60분>과 형식과 내용이 유사한 프로그램도 여럿 있다. 이들이 성향도 크게 다르지 않다. 미군에 의한 여중생들의 죽음, 여야 할 것 없는 정치권력의 부패상, 유린되는 사회적 약자의 인권, 대안적 목소리나 새로운 정치세력에 대해서 무관심하다. 대표 공영방송의 시사프로그램으로서 공신력과 권위, 목소리와 색깔을 잃고 있는 것이다.
<추적 60분>이 처음 한국방송에 등장한 것은 1983년 2월이다. 국내에서 시사다큐멘터리의 새 장을 열었던 <추적 60분>은 군사정권에 의한 안팎의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1986년 5월 막을 내렸다. 얼마후 한국방송은 ‘시청료 거부운동’이라는 치명적 상황을 맞았다.
(최영묵 / 성공회대 교수·신문방송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