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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계 비리 수사 어디까지
2002-09-18

이른바 ‘거물급’들이 도피성 출국을 한 이후 ‘연예계 비리’ 수사에 진전이 없는 가운데 사건 마무리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방송가에서는 “죄가 없으면 해외로 도망을 갔겠느냐”는 비난과 함께 철저히 준비하지 못한 검찰에 대해 조소의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이번 수사의 성과라면 일부 거대기획사와 방송사 피디들의 ‘검은 거래’가 사실로 드러났다는 것이다. 그러나 방송가에서는 소문만큼의 성과를 냈느냐에 대해서는 회의적 시각이 많다. 이수만과 서세원 등은 갖가지 의혹이 밝혀지지 않은 상황에서 해외로 달아난 상태이며, 소환대상 피디들도 다른 부서로 피해 있거나 출국 뒤 휴직계를 내는 등 편법을 쓰고 있다.

한국방송 예능국의 한 피디는 “비리소문이 파다한 한 간부는 이미 사건이 터지기 전에 심의평가실로 발령이 나 회사에 잘 다니고 있다”며, “검찰이 사전에 실질적 증거를 확보하고 수사에 들어갔으면 이렇게까지 혼란스럽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에스비에스 예능국 배아무개 부국장은 미국으로 휴가를 간 뒤 다시 건강진단서를 보내와 지난 9일부터 두달간 병가휴직에 들어갔다. 에스비에스 한 간부는 “사장도 공식 회의석상에서 잘못이 없으면 나타나서 자신의 떳떳함을 밝히라고 지시했는데도 출근하지 않고 있다”며, “‘사기’를 먹고 사는 대부분의 피디들을 위해서라도 회사쪽이 이 문제를 분명히 처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이남기 제작본부장은 “만일 소환대상자들의 혐의가 밝혀지지 않으면 명예훼손의 상처만 주게 되는 것”이라며, “변호사를 사서 정당하게 진술하겠다며 사규에 있는 휴직을 쓰겠다고 하는데 어떻게 당장 그만두라고 하느냐”고 말했다. 한편 휴가기간을 다 쓴 문화방송 은아무개 피디는 무단결근으로 면직처리된 것으로 알려졌다.

가요계 홍보비 뇌물비리를 보도해 연예계 비리수사에 실마리를 제공한 문화방송 <시사매거진 2580>의 한 제작진은 “문화방송이 자사 피해를 감수하고 개혁적 보도를 했는데 문화방송 피디만 잡혀가고 구조적 비리가 훨씬 심각한 한국방송과 에스비에스는 처벌받은 피디가 없다”고검찰을 강하게 비판했다. 한 가요 매니저는 “이번에 검찰에 왔다갔다 한 매니저들은 방송에 발붙이기 힘들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업계에서는 이번 사건으로 기획사나 방송사 모두 상처만 입고 변호사만 좋아졌다는 말이 나올 정도”라고 귀띔했다.

한편 사건을 맡아왔던 서울지검 강력부는 김규헌 부장에서 노상균 부장으로 교체됐다. 그러나 검찰이 방송가의 이런 실망과 비난을 잠재워줄 만한 뚜렷한 수사의지를 보일지는 미지수다.

권정숙 기자 good@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