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tory
란(서기)과 아군(조미)은 부모가 살해당한 뒤 킬러로 성장한 자매다. 우연히 예전에 사랑했던 옌(송승헌)을 만난 란은 평범한 행복을 찾기로 결심하지만, 범죄증거를 없애기 위해 란을 제거하려는 컴퓨터 재벌의 음모에 희생되고 만다. 홀로 남겨진 아군. 그녀는 자신들의 뒤를 쫓던 형사 홍(막문위)과 손을 잡고, 아버지가 남긴 인공위성 프로그램 '월드 파노라마'를 무기삼아 언니의 복수를 준비한다.
■ Review
<버추얼 웨폰>은 한때 아시아를 사로잡았던 홍콩 액션영화의 흔적을 희미하게나마 간직하고 있다. 스스로 사지(死地)를 향해가는 희생, 무덤 앞에서 눈물로 맹세하는 복수, 적으로 마주선 두 사람의 미묘한 공감. 이 낯익은 순간들은 난데없는 액션마저 비극으로 감싸안을 수 있는 홍콩영화만의 무기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로미오 머스트 다이> <리쎌웨폰 4> 등에 참여하면서 할리우드를 경험한 원규 감독은 이런 비장미를 아주 잠깐씩만 기억해냈던 것 같다. 홍콩 최고의 육체가 맞부딪치는 리듬과 관능. 원규는 오랜 파트너인 이연걸과는 다른 방식의 액션을 창조하면서, 정직한 무술 대신 보다 감각적인 몸짓 속으로 빨려들어갔다.
<버추얼 웨폰>은 첫장면부터 분명한 승부수를 던진다. 최첨단 빌딩에 침입한 흰옷의 킬러나 컴퓨터 프로그램을 사용해 움직임을 지시하는 살인의 방식은 영화 전체를 압축하는 예고편과 같다. 이 영화는 바람처럼 움직이는 여체 위에 사이버 세계의 은색 광택을 덧입힌 것이다. 높은 굽의 하이힐 때문에 더욱 길어보이는 다리가 아찔하게 천장을 내리꽂을 때나 분명한 굴곡을 지닌 여배우들이 허공에서 교차하며 긴 머리카락을 잔상처럼 흘려보낼 때, <버추얼 웨폰>의 빈약한 드라마는 탄탄하게 다져진 무술의 기초가 없다면 불가능했을 볼거리 뒤에 잠시 모습을 숨길 수 있다.
원규는 "컴퓨터그래픽을 과도하게 사용해선 안 된다. 액션과 맞아야 한다"고 홍콩으로 돌아와 만든 자신의 신작을 설명했다. 분명 <버추얼 웨폰>은 CG로 범벅이 된 요즈음 홍콩 액션영화보단 훨씬 진실한 면이 있다. <버추얼 웨폰>은 무엇보다 사람과 사람이 승부를 겨루는 영화이며, 아군이 죽은 언니의 마지막 모습이 박힌 캠코더를 땅에 묻을 때처럼, 속도 빠른 액션영화들이 흘리고 가는 감정을 잡아낼 때도 있다. 그러나 원규는 또 하나 장담한 것이 있다. 이 영화는 "드라마가 있는 액션영화"라는 것. <버추얼 웨폰>은 액션에 드라마가 있다기보다 액션과 드라마가 서로 상관없이 교대하는 영화에 가깝다. 일본도가 날카로운 쇳소리를 울리는 마지막에 도달할 때까지, 시간이 매우 길게 느껴지는 것은 아마 그 때문일 것이다.김현정 parady@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