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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송령의 <요재지이>(聊齋志異)
2002-09-13

격조있는 괴담의 보물창고

일반적으로 중국인들은 과장이 심하다. 무협영화를 봐도 그렇다. <촉산전>의 영웅호걸들은 수백년씩 수련을 쌓으며 신선이 되고, 하늘을 나는 것은 기본에 손짓 하나로 태산을 움직인다. 워낙 넓고 다양한 민족이 사는 대륙이다보니, 상상력까지 함께 광활해진 것일까? 중국인의 상상력을 엿볼 수 있는 책으로 흔히 8대기서를 꼽는다. 명대의 4대기서 <삼국지연의> <수호전> <서유기> <금병매>에 청대의 <유림외사>(儒林外史), <홍루몽> <금고기관>(今古奇觀) 그리고 <요재지이>(민음사, 전 6권)가 그것이다. 어느 것이나 당대의 생활상은 물론 천의무봉한 상상력까지 맛볼 수 있는 책들인데, 그중에서도 <요재지이>는 ‘요정이나 신선, 여우, 귀신 등을 주인공으로 삼아 이색적인 내용을 기록한 지괴서(志怪書)로 유명’하고 수많은 소설과 영화에 영감을 준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장국영 주연의 <천녀유혼>도 <요재지이>에 담긴 <섭소천>을 각색했다.

<요재지이>는 청대의 작가 포송령이 중국의 괴담과 설화를 모아 집필한 문언단편소설집이다. 남녀의 자유연애, 과거제도의 폐단, 사회의 부패상과 탐관오리들의 만행을 폭로하는 이야기부터 여러 가지 이문(異聞)들, 조수충어(鳥獸蟲魚)와 초목죽석(草木竹石)의 황당한 변화, 민간의 기이한 풍습, 기묘한 자연 재해까지 온갖 것들을 담고 있다. 포송령이 <요재지이>를 쓰게 된 데는 사연이 있다. 어릴 때부터 문재를 날리고 첫 동자시에서는 단연 일등을 하였지만, 그뒤의 과거에서는 계속 낙방하게 된다. 포송령의 문장을 알아볼 시험관이 없었고, 있다 해도 뇌물에 매수된 탐관오리들뿐이었다. 결국 과거를 포기하고 지방에서 막료생활을 하던 포송령은 관리들의 부패상이나 세도가의 잔혹함, 백성들의 고통을 직접 체험하며 <요재지이> 창작에 몰두하게 된다.

포송령의 자서(自序)에는 <요재지이>를 쓰는 심정이 이렇게 담겨 있다. ‘담쟁이를 입고 향초를 허리에 두른 산귀(山鬼)는 굴원의 영감을 자극하여 <초사>라는 위대한 문학을 낳았고, 쇠 귀신과 뱀 요괴의 환상적인 변환은 이하가 그의 시에서 즐겨 다루던 소재였다. 그들은 모두 가슴속에서 우러나는 대로 시를 지었고 세속에 영합하여 자신의 글에 수식을 가하지 않았는데, 좋은 글이란 대체로 이렇게 지어진 것이다…. 신기한 이야기의 수집을 좋아했고, 취미는 또 항주로 귀양갔을 때의 소식과 흡사하여 남들이 들려주는 귀신 이야기를 퍽이나 즐기는 편이었다. 그런 이야기들을 얻어듣게 되면 그 즉시 붓을 휘둘러 기록해두곤 하였는데, 그것이 쌓이다보니 마침내 이렇듯이 두꺼운 장편 대작이 되었다.’ 세상의 모순에 분노하면서 또 절망한 포송령은 자신의 모든 정열과 욕망을 <요재지이>에 쏟은 것이다.

포송령은 단순히 귀가 솔깃해지는 이야기를 수집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요재지이>의 황당한 이야기들은 ‘격조있는 문언, 시, 사, 사부, 의론문, 변려문, 팔고문이 삽입되고 구어와 속어가 어우러진 대화들로 중국 언어예술의 보고’인 동시에 ‘기이한 소재와 정교한 스토리 구성, 이채 찬란한 인물들의 형상은 평범하고 통속적인 설화들과는 다른 <요재지이>만의 독특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능력은 있지만 알아줄 이 없어 초야에 묻힌 포송령은 ‘육도는 끝간 데 없이 멀지만 결국은 정해진 운명임이 어찌 아무 근거도 없이 허황된 말이라 하겠는가?… 진정 나를 알아줄 이는 꿈속에서나 만날 수 있는 귀신들이런가?’라고 자문하며 <요재지이>에 자신의 사상과 영혼을 담은 것이다. 그 덕에 중국 ‘이야기’의 보고인 <요재지이>가 만들어졌고, 지금도 그 기괴한 이야기들을 읽으며 감탄한다. 역시 고통과 절망이 위대한 예술을 낳는다고 말해야 하는 걸까?김봉석/ 대중문화평론가 lotusid@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