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일 이 영화의 구조를 그대로 가져다가 로버트 레드퍼드가 감독하고 기네스 팰트로와 재닛 잭슨이 주연했다면? 아마도 뻔한 스포츠영화 이상이 되지 못했을 것이다. 그만큼 <슈팅 라이크 베컴>의 구조는 가장 쉬운 방식으로 감동을 주는 골격을 갖추고 있다. 그런데도 이 영화는 감동적이다. 누가, 누구의 시점으로 이야기하느냐, 그리고 ‘누구의’ 이야기이냐에 따라 똑같은 구조의 영화라도 오는 감동이 다르다.
이 영화를 감독한 영국의 인도계 여성감독인 거린다 차다는 이 작품을 통해 자기자신의 정체성을 가장 일반화하여 보여주었을 뿐이다. 사실상 감독은 많이 타협하고 있다. ‘베컴’은 영국의 가장 평범한 슈퍼스타이고 그를 동경하는 ‘인도소녀’라는 설정 자체가 영국 대중에 다가가겠다는 뜻이다. 그런데 그것이 똑같은 할리우드영화의 ‘쉬운 해피엔딩’과 다른 점은? 다가가겠다는 결심 자체가 문화적 장벽을 뚫으려는 소수자의 정치적 지향성을 안고 있다. 그래서 다르다. 영화가 일종의 정체성의 싸움이기도 하다는 점을 이 영화는 유쾌하고 효과적으로 보여준다.
음악도 유난떨지 않고 대중적이다. 물론 인도음악 냄새가 나는 음악들이 많이 쓰였으나 이 영화에 나오는 인도풍은 어떤 의미에서 가장 팝적이고 서구화된 인도풍이다. 언니의 결혼식 장면을 풍부하고 열정적인 리듬으로 채워주고 있는 B21의 <다르샨>을 제외하면 모두 우리에게 익숙한 리듬을 지니고 있다. 분명히 카레향이 물씬 나지만 일종의 테크노로 보아도 무방하다. 탈빈 씽 같은 인도계 테크노 뮤지션들이 영국에서 괄목할 만한 활약을 하고 있는 것은 다 아는 바와 같다. 반복적이고 환상적인 리듬을 구사하는 인도음악의 특성은 역시 반복적이고 사이키델릭한 리듬을 구사하는 테크노와 잘 어울린다. 인도음악의 ‘테크노화’가 가장 성행하고 있는 곳이 바로 영국이다. 물론 인도 전통음악을 고수하려는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이런 시도가 다 ‘타협’으로 보일 것이다. ‘음악 버린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그런 시도는 놔둘수록 좋다고 생각한다. 결국에는 그 시도가 그들의 정체성을 다수자의 틈바구니에서 정초시키는 데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O.S.T에는 그뿐 아니라 R&B도 들어 있다. 스파이스 걸스의 멤버였고 데이비드 베컴의 아내인 빅토리아의 곡은 평범한 R&B이지만 그녀의 이름 자체가 이 영화와 잘 어울린다. 또 펑크 성향의 파워팝도 들어 있다. 블론디의 <어토믹>이 그것이다. 이 노래는 광고를 통해 축구하는 장면과 붙어 나온, 축구팬들에게는 매우 친근한 노래이다. 거기다가 블론디의 싱어가 여자라는 점도 이 영화의 페미니즘적 성격과 잘 어울린다. 제목은 다이내믹한 힘, 남성적 힘을 암시하고 있으니 그 뒤집기를 위해 매우 효과적인 노래이다. 이처럼 이 영화의 O.S.T는 아무 팝이나 듣기 편하고 신나면 가져다 쓰는 것이 아니라 영화의 정치적 의도에 잘 부합하는 선에서 대중에게 아주 친근한 팝들을 골라 넣고 있다. 음악적으로도 ‘영국대중’과 타협을 하긴 하지만 묘하게 그 타협 안에 정치적 지향성이 발휘되고 있다. 인도 사람들 음흉한 거 누가 모를까봐, 묘하게 줄타기를 하면서 자기 정체성을 드러내고 있다. 균형감각이 보통이 아니다. ‘인도’와 ‘여성’의 정체성 가운데 어디다 더 무게를 두었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딱 맞추는 걸 보면.성기완/ 대중음악평론가 creole@hite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