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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리 아래만 어른인가? 성인용 게임 시대의 도래
2002-09-12

컴퓨터 게임

국내에서 출시된 온라인 게임들이 그렇게 많아도 ‘성인용’을 지향하는 경우는 드물다. ‘18세 이상 사용가’라는 딱지가 붙은 게 없는 건 아니지만, 그건 업체의 의도라기보다는 심의결과 때문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공작왕>의 경우, 등급 분류 결과 ‘18세 이상 사용가’가 나오자 한동안 국내 최초의 성인용 게임으로 본격 성인용 온라인 게임을 보여주겠다고 광고했다. 하지만 한달도 채 안 되어 내용을 전부 수정하고 재심의를 받아 청소년도 플레이할 수 있게 되었다. 성인용 온라인 게임을 만들지 않는 건 게임은 아이들이나 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제작사 역시 뿌리칠 수 없기 때문이다. 게임의 주요 구매자가 청소년인 현실에서 성인용 게임은 설 자리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기획 내용과 의도가 어쨌건, 게임 속 표현이 어쨌건 상관없이 무조건 청소년 이용가 등급을 받으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의외로 유료화된 온라인 게임 유저의 70% 이상이 20대 이상의 성인이다. 무료 베타 서비스 때는 물론 이야기가 다르다. 하지만 최소한 유료로 돌아선 뒤에는 성인의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은 것이다. 더욱 의외인 것은, 유저들 입장에서도 18세 이상 등급을 긍정적으로 보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같은 게임이라도 성인 전용 서버에서 플레이하는 것을 선호한다. 기껏해야 초등학생, 중학생들한테 반말짓거리를 들으며 울분을 삭일 일이 없어도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업체들이 18세 이상 등급을 받기를 꺼리는 가장 큰 원인은 PC방이다. 현행법상 PC방에 전 연령가 게임을 설치하면 귀찮은 일이 한둘이 아니다. 업체 입장에서는 PC방의 수요를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점차 PC방에서 개인 사용자로 넘어가는 추세를 감안한다면 앞으로는 사정이 달라질 것이다.

이런 면에서 최초의 성인용 온라인 게임을 표방하고 나온 액토즈의 <A3>는 발빠른 전략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이만큼 성인 유저들이 늘어났으면 성인용 게임에 대한 수요가 존재한다. 청소년 이용가 등급을 받기 위해 고민해야 했던 표현이나 내용의 제약에서도 상당부분 자유로워질 것이다. 청소년보다 성인이 구매능력이 있다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이제 겨우 방향을 잡았을 뿐, 성인용 게임에 대한 이해는 아직 멀었다는 생각이 든다. <A3>의 광고에서는 피 한 방울과 함께 ‘첫경험’, ‘아무에게나 보여주지 않는다’는 문구, 그리고 여성 모델이 야릇한 표정을 짓고 있다.

<미스트>는 국내에선 그다지 팔리지 않지만 어드벤처 장르가 거의 몰락하다시피 한 지금도 전세계적으로 꾸준한 인기를 얻고 있는 게임이다. <미스트>는 미지의 섬에서 주위의 모든 것을 이용해 다양한 수수께끼를 풀고 탈출하는 이야기다. 이 시리즈만 나왔다 하면 월스트리트가 조용해진다는 얘기가 있다. 월스트리트에서 일하는 펀드 매니저, 회계사, 컨설턴트 등이 정신 못 차리고 빠져들기 때문이다. 어떤 변호사가 <미스트> 하느라고 회사가는 것을 잊었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다. 이 게임은 그만큼 지적 추리와 사물에 대한 깊은 이해, 통찰력과 종합, 분석능력을 필요로 한다. <미스트>는 어린이는 물론, 중·고등학생들이 하기도 쉽지 않은 성인용 게임이다. 삶과 죽음의 후회를 주제로 한 <플레인스케이프 토먼트> 역시 청소년보다는 사회에서 많은 경험을 한 뒤에 더 많은 것을 느끼게 해주는 게임이다.

앞으로 성인용 게임이 더 많이 등장하기를 바란다. 표현의 자유를 날개 삼아, 더 깊고 풍부한 게임 세계를 보고 싶기 때문이다. 하지만 제작사들은 성인은 허리 아래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걸 명심해야 할 것이다. 박상우/ 게임평론가 www.MadOrDead.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