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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미 있는 영웅,식상하지 않는 인물 <레인 오브 파이어>
2002-09-11

■ Story

어린 퀸은 탄광 안에서 선사시대에 멸종된 익룡을 발견한다. 무서운 파괴력을 가진 용은 빠른 속도로 번식하며 인류를 위협하고, 핵무기까지 써가며 용을 멸종시키려 한 시도는 오히려 지구의 황폐화와 인간 종에 대한 위협으로 다가온다. 낡은 성곽에서 익룡의 습격을 피하는 공동체의 대표로 살아가는 퀸(크리스천 베일)에게 어느 날 익룡 사냥꾼 밴젠(매튜 매커너헤이)이 무리를 이끌고 찾아온다. 여러 가지로 의견의 충돌을 빚는 퀸과 밴젠은 결국 익룡의 중심인 수컷 용을 처치하기 위해 런던으로 향한다.

■ Review

줄거리만 보자면 이 영화는 “괴물이 나타났다!”류의 어린이용 SF물처럼 유치하기 짝이 없다. 아닌게아니라 여기서 제시되는 묵시록적 미래의 매개는 외계인의 침략이라든가 인류의 욕심이 빚어낸 대가가 아니라 동굴 속에 수십억년 동안 잠자고 있던 익룡인 것이다. 따라서 악의 대명사는 익룡이며 그 갑작스런 출현에 아무런 빌미도 제공해주지 않은 인간은 절대적인 희생자이자 선한 존재이다.

그러나 이 영화의 전개는 사뭇 의외의 그림을 보여준다. 익룡 출현 이후의 세계는 어둡고 음울한 미래의 도시가 아니라, 오히려 현대문명이 모조리 자취를 감춘 과거의 세계이다. 낡은 성곽 안에서 살아가고 있는 퀸의 공동체 모습은 한마디로 중세 유럽의 빈농에 가깝다. 그들은 신통찮은 경작으로 근근이 생활을 이어가고 매와 망원경을 가지고 망을 보며 퀸은 촛불이 가득한 성당 안에서 밤마다 어린이들에게 용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주의사항을 이야기한다. 중세의 유럽 전래동화에 등장하는 것과 같이 정부도 매스컴도 사라져버린 이 세계에서 용은 자연의 두려움을 간직한, 막을 수 없는 천재지변의 존재이며 퀸의 공동체 사람들은 이러한 자연적 대재앙을 소극적으로 피해 살고 있는 약한 자들이다.

이러한 퀸의 세계에 탱크와 헬기를 타고 나타나는 밴젠의 무리는 분명히 이질적이다. 마치 핍박받는 노동자를 선동하는 혁명가처럼 밴젠은 적극적이고 직접적으로 그리고 지능적으로 용에게 맞서 싸울 것을 종용한다. 그렇게 해서 퀸과 밴젠, 그리고 여자 헬기조종사 알렉스는 대마왕을 무찌르러 가는 정의의 기사들처럼 익룡의 날개로 뒤덮인 불타버린 수도 런던으로 향한다. 다분히 유치하고 혼란스러울 수 있는 구도는 이처럼 영화적 정서의 실마리를 과거에서 찾고, 이런 유의 영화에서 소홀해질 수 있는 캐릭터의 성격을 비교적 세심히 다듬어준 결과 상투적이지 않을 뿐 아니라 인물에게 몰입하는 재미를 찾을 수 있는 여지도 갖게 되었다. 물론 대마왕격인 수컷용은 결국 이들 세 사람에 의해 비교적 쉽게 처단되고, 언제나 그렇듯이 영웅이 존재하는 영화의 결말은 동의하기 어려운 법이다. 그러나 새로운 시대가 다가오기를 천천히 기다릴 뿐인 이 영화의 영웅은 그다지 식상할 만한 인물이 아니다. 결말에 이르는 과정에서 보여준 인간미 때문이다. <맥가이버>와 <X파일> TV시리즈, 그리고 영화 <X파일>의 롭 바우먼 감독의 두 번째 영화이다.손원평/ 영화평론가 thumbnail@freech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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