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애하는 독자들이여, 이제부터 아주 못된 얘기 하나를 들려주겠노라. 마르키스 드 사드를 엄청 부풀려 찬양하는 필립 카우프만의 영화는
이렇게 시작된다. 1794년 파리, 프랑스 혁명의 예언자였던 동시에 또 그 결과물이었던 사드와, 그로 인해 죽임을 당한 젊은 여인의 이야기가
샤렝턴 정신병원을 배경으로 펼쳐진다.
사드(제프리 러시)가 자기 모습대로 마음껏 그의 괴물스런 자아와 이 자아에 탐닉할 방법들을 내보이는 곳은 여기 샤렝턴 정신병원이다. 이
병원의 행정을 맡은 젊은 사제 쿨미어(와킨 피닉스)는 예술의 치유능력을 믿고, 불을 지르는 것보다 불을 그리는 것이 얼마나 더 나은 일인지를
설명하는 계몽주의시대의 인간이다. 그리하여 사드는 섹스 장난감들과 함께 골방에 편안히 틀어박혀서는 연극무대에 올릴 만한 대본과 소설을 쓸
기회를 얻으며, 이 병원의 소박한 하녀 마들렌(약간의 영국 코크니 악센트가 박혀 있는 케이트 윈슬럿)은 이를 몰래 빼돌려 출판업자들에게
갖다준다.
사드의 황당하고 경악스런 이야기들을 친구들에게 읽어주는(이 친구들로 말할 것 같으면 이야기를 듣고는 즉각 셋이 엉켜 트리플 섹스를 벌이는
자들이다) 순결한 마들렌은 별 이상한 녀석의 끈적한 눈길을 끌고 쿨미어의 연모를 받으며 끊임없이 사드의 찝쩍거림을 받지만 그러면서도 줄곧
처녀성을 유지하는 여자다(비록 마들렌의 순결은 영화갈등 구조상 흠모할 만한 그리고 심지어는 필수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지지만 이에 반해 영화제작자들은
사랑하는 여자를 향한 성적 욕구를 따르지 않고 참는 쿨미어 신부에 대해선 바보천치보다 못한 놈으로 묘사한다. 이들은 유독 쿨미어에 대해서만
이렇듯 매우 모던하고 비종교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기다랗고 쥐새끼 같은 회색 가발을 쓴, 우스꽝스러우리만치 뼛속 속속들이 난봉꾼인, 제프리 러시가 으쓱거리고 윙크해대고 추파를 던져대며 연기하는
사드는, 입술을 뭉개는 느끼한 웃음과 함께 갖은 달콤하고 근사한 말들을 세상을 향해 쏟아낸다. 이 사드는, 비누아 자코 감독이 그린 프랑스판
<사드>에서 다니엘 오테이유가 연기하는 ‘디바인 마르키스’보다 훨씬 덜 철학적이며 또한 훨씬 덜 불경스럽다. <퀼스>의 사드도 성경책에
침을 한번 뱉기는 하지만.
<퀼스>에서 제일가는 사디스트는 물론 로이 콜라 박사다. 그 스스로 실은 매우 비속하고 고딕적인 삶을 살면서 그는 어린고아 신부를 가두어놓고 성적 노리개로 삼는다. 이 탐스런 정보는 곧 온 샤렝턴에 퍼지고 사드는 이것을 조롱의 대상으로 삼아 이들 부부 앞에서
무대에 올려 공연을 한다. 발끈한 로이 콜라는 이것을 빌미로 무대를 폐쇄하고 불쌍한 쿨미어로 하여금 사드를 더이상 글 쓰지 못하게 조치하도록
한다. 글을 쓸 펜(퀼스)을 빼앗긴 이 악마 같은 작가는 그러자 와인과 닭뼈를 가지고 네크로필리아에 관한 이야기를 침대시트에 새겨넣는데,
이것은 고작 시작에 불과했다. 순결한 어린 소녀들로 하여금 마르키스의 마법에 빠지게 만듦으로써 <퀼스>가 그의 인간적인 면을 부각시키는
것은 매우 충격적이다. 하지만 <퀼스>는 대부분 여성들인 사드의 독자와 관객을 다 그런 식으로 묘사한다. 로이 콜라의 부인 역시 그런 팬
중 하나다. 참으로 대단한 팬이어서, 몰래 숨겨 아껴가며 읽던 책 <저스틴>을 보수공사와 인테리어 작업을 맡은 젊고 잘생긴 건축가의 손에
가게 만들고 결국 그 책을 증거로 남겨 들키게끔 일을 초래하는 것이다.
한편 마들렌은 사드를 위해 잔다르크가 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마들렌은 사드의 공범이라는 사실이 밝혀져 태형을 당하고 결과적으로 병원에서
나가게 되자 떠나기 전날 밤, 사드에게 마지막 이야기를 청하고, 이야기는 사드의 독방에서 마들렌이 있는 곳까지 친한 환자들의 통신망, 그들의
입과 귀를 통해 전화통화라도 하듯 전달되기에 이른다.
그 결과는 실로 엄청나다. 정말 대단히 오버한다고밖에 할 수 없다. 심지어는 날씨마저 폭풍우로 돌변하고 병원 전체가 완전 동요에 휩싸인
채 충격상태에 놓여, 강간하고 발작하고 시체와의 사랑에 탐닉하고 똥그래피(만약 인간의 대변을 가지고 글씨를 쓰는 것을 이렇게 부를 수 있다면)를
해대고 난리가 아니다. 이 모든 일은 우스꽝스럽다 못해 대단히 불쾌하다.
궁극적으로 카우프만의 사드는 초현실주의자들이 생각했던 “실존했던 가장 자유로운 인간”이 아니다. 원작 연극에 비해 영화에서 더욱 선명해진
점은, <퀼스>가 검열반대 선언이라는 것, 심지어는 할리우드를 방어해주고 있다는 것이다(카우프만의 훨씬 섹시한 전작 <헨리 앤 준>은 할리우드
영화산업을 깜짝 놀라게 만들어 NC-17등급이란 제도를 창안하게 했으며 그로 인해 부당한 고통을 받았었다). 어쩌면 영화의 성적 표현에
관한 의회청문회에서 마들렌의 대사를 읊조리는 젊은 영화팬을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책을 읽으며 그렇게 나쁜 여자가 되는 상상을 하지
못했다면, 나는 현실에서 착한 여자가 될 수 없었을 걸요.”(2000.11.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