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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페이스풀>이 내포한 에이드리언 라인식 상투성(1)
2002-09-05

불륜은 가라?

스스로의 계보로 쌓은 자생적 클리셰들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는 영화를 맞부딪치는 순간, 그것을 비평적 언어로 접근해야만 하는 의무를 갖고 있는 사람들은 곤혹스런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이에는 이라는 식으로 대응할 것인가, 말하자면 수려한 무관심으로 노가리를 풀거나 무섭게 찡그린 비난으로 씹어댈 것인가, 아니면 그 영화적 클리셰가 유도해내고 있는 비평적 언어의 클리셰들을 물리치기 위해 진땀을 흘리며 어떤 방식으로든지 최선을 다할 것인가. 즉, 영화에 부여되는 ‘명징한 독해’의 위험성으로부터 어떻게 벗어날 것인가. 지금 에이드리언 라인의 <언페이스풀>이 그런 위치에 놓여 있는 대상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므로 이건 명징한 독해의 위험성으로부터 벗어나보기 위한 경험적 수난기이며, 그 시도에 관한 고백록에 가깝다.

바람, 바람, 바람-일탈의 귀환

에이드리언 라인은 잊혀져가던 감독이다. 돌이켜보건대, 그의 감각이 정점에 이른 것 같았던 <야곱의 사다리>에서조차 그는 CF의 개념으로 각 신을 이루어 한편의 영화를 완성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든다. 그럼으로써 그 영화에서의 베트남전에 관한 후유증은 어느 순간 현란한 이미지 스타일에 휩싸여 어디론가 증발해버리고 말았다. 그에게 육체의 욕망은 카메라의 동기이며, 그것이 춤이든지 섹스이든지 간에 그 감정의 흐름을 짧은 호흡을 따라 포착할 때만이 생동감 있게 살아 움직이게 된다. 결국 그는 마치 극단의 선택인 듯 <로리타>를 소재로 다시 돌아왔지만, 외부로부터는 피할 수 없는 사형선고를 다시 한번 언도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클로드 샤브롤의 영화를 각색하여 만든 <언페이스풀>이 그 다음 영화가 되었다는 점은 그의 영화적 궤도가 별로 변한 것이 없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것은 또한 그에 대한 통상의 평가 역시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예시하는 것이기도 하다. 에이드리언 라인의 영화에 관한 ‘일반적인’ 독해의 의미에서, 그가 집착하는 것은 평온한, 또는 정상적인, 또는 굳건한 삶의 계약관계에 균열을 일으키는 섹슈얼리티의 융기과정이다. 인물들은 <나인 하프 위크> <위험한 정사> <은밀한 유혹> <로리타> <언페이스풀>에 이르기까지 역할을 뒤바꿔가면서 같은 위기를 반복한다.

<언페이스풀>의 에드워드와 코니 역시 남부러울 것 없는 중산층 부부이다. 뉴욕 외곽에 살고 있는 그들 가정이 소개되고 난 뒤, 영화는 곧장 본론으로 입성한다. 시내로 쇼핑을 나간 에드워드의 아내 코니는 심하게 부는 ‘바람’에 넘어져 상처를 입고, 젊은 남자 폴에게 도움을 받는다. 택시를 잡아타고 곧장 집으로 갈 수도 있었던 코니는, 그러나 폴의 호의를 거절하지 않는다. 세 번째 만남만에 그녀는 폴의 품에 안긴다. 그런데 도대체 이토록 빨리 코니를 침대로 이끄는 폴의 매혹은 어디에서 생겨나는 것인가. 코니의 일탈을 촉발시키는 원인은 무엇인가. 이것은 코니와 폴 사이에 놓이는 것(그 둘은 아무런 불화도 없으며 다툼도 없다. 진심으로 사랑하기까지 한다)이 아니라, 남편 에드워드와 정부 폴 사이의 구도에 놓인다. 남편 에드워드와 폴은 하나부터 열까지 완전히 다른 사람이다. 현실적이며 가정적인 에드워드에 비해 폴은 낭만적이고 격정적이다. 주식시세의 오르내림에 관심을 쏟는 무기차량 판매상(무기차량 판매상! 이 희소한 직업을 에드워드에게 선사한 건 그와 폴의 거리가 더 멀어져야 했지 때문이다) 에드워드에 비해 중고서적 판매상인 폴이 코니에게 선사하는 것은 아름다운 문구가 박혀 있는 서적이다. 시내 외곽에 거주하면서도 전형적인 뉴요커의 삶을 살아가는 에드워드에 비해, 시내 한구석에 살고 있는 프랑스인은, 그녀에게 뉴욕에 세워진 샹젤리제 거리인 것처럼 일탈의 자유로움을 만끽하게 한다. 코니로 하여금 섹슈얼리티의 일탈을 감행하도록 하기 위해, 그것의 보장을 위해, 에이드리언 라인이 걸어놓은 유혹의 미끼는 ‘대조’이다. 이 대조의 양극이 한점에서 만나 엉클어질 때 사건은 발생한다. 침착하고 이성적인 에드워드가 폴의 격정적인 장소 안으로 들어서면서 긴장의 장력이 형성된다. 그리고 그 장소 안에 자신의 애정이 담겨 있는 유리장식을 보는 순간 살인이 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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