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기는 광고없이 그냥 좋은 것만 골라서 내보내는데 여기 와보니 광고가 반이더라…. 아버지 돌아가시고 좀체 마음을 못 잡으시다가 ‘아버지 평소 좋아하시던’ TV방송 드라마를, 때맞춰 여기저기 채널 돌리며 보기는 아무래도 버겁고, 케이블TV로 느긋하게 한꺼번에 보는 일로 겨우 사는 재미를 챙기신 어머니는 그렇게 말씀하셨다.
그래요?… 마포 토박이로 평생 서울을 떠난 적이 없는 어머니가 아버지 돌아가신 뒤 형네 식구들과 ‘용인’으로 이사를 갔을 때 마음이 썩 안 좋았던지라 ‘서울 귀환’을 축하드렸던 나는 잠시 어리벙하다가, 광고없이 드라마만 하는 케이블방송이 있나, 신기하고 다소 부러웠다. 하긴 카페-레스토랑에 밀려 구식물건이 되기는 했지만 그래도 동네마다 꼭 하나씩은 있는 ‘마담 다방’ 같은 데 앉아 있으면 그런 방송이 나왔던 것 같은데….
한 1년 전부터 육체노동에 가까운 ‘글 벼락’(돈 벼락과는 전혀 무관한)을 맞고 집안에 죽치고 밤낮없이 책상에 엉덩이를 ‘접착’시켜야 하는 신세로 전락한 나는 음악보다 케이블영화 TV를 ‘틀어놓는’ 버릇이 생겼는데, 시청 때문이 아니고, 이놈 저년 떠드는 소리로 작업의 지독한 무료를 달래기 위해서였다. 그러다 서너달 전 KBS와 SBS도 ‘플러스’방송사를 개설, 공중파 방송3사가 모두 드라마 전문 방송사를 개설하기에 낯익은 이놈 저년들 떠드는 소리가 낫겠다 싶어 그쪽으로 채널을 돌렸는데 드라마는 영화보다 ‘응집도’가 떨어져 틈나는 대로 ‘엿보는’ 재미도 생겼다. 김수현의 <사랑과 야망> <목욕탕집 남자들>, 김운경의 <서울의 달> <서울뚝배기> 등은 방영 당시 커다란 반향을 얻은 ‘대박’ 드라마지만 세월의 색깔을 머금어 그런가 요즘 드라마에 비해 정말 ‘고전적’이라 할 만큼 진지하고 짜임새 있어 보였다. 그런데 KBS와 MBC, 그리고 SBS 플러스들의 주인공은 물론 월드컵 축구 스타들이 아니지만, 그렇다고 드라마 작가도 PD도 스타도 아니다. 진짜 주인공들은 광고 쇼핑 호스트들이다. 50분 전후의 드라마가 끝나면 어김없이 3~분 가량의 광고 ‘1편’(이렇게 긴 광고는 불법 아닌가?)이 이어지고 어떻게 보면 단 1편의 광고가 그렇게 하루 종일, 며칠 동안, 한달 넘게 이어진다. 광고가 시작되면 음량이 크게 증폭되니 깜짝 놀라기 일쑤고, 건강식품-다이어트 관련 광고 내용은 혐오스럽고 위협적이며, 여성용 팬티 광고는 남세스럽고 더티하여 정말 공중파 방송의 세련되고 짧은 광고가 그리워질 정도니 ‘야만적’이라 할 만하다. 이런 건 모두 불법 아닌가?김정환/ 시인·소설가 maydapoe@thrunet.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