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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바웃 어 보이> O.S.T
2002-09-05

일상성과 사이키델리즘

“사람은 섬이 아니다”(No man is an island)라는 말을 비웃는 것으로 시작하여 결국 “사람은 섬이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그물로 연결된 섬이다”라는 깨달음으로 끝나는 이 휴먼 코미디의 분위기는 잔잔하고 일상적이다. <브리짓 존스의 일기>에서 그랬던 것처럼 영화는, 문제는 대개 마음속에 있고 또 그 마음속의 문제는 ‘관계’로부터 나온다는 것을 매우 섬세한 시선으로 찾아내고 나름의 해결을 구한다. 해결은, 뭐, 뻔하지만, 관계에 관한 재인식에서 찾아진다.

이 영화의 음악은 특이하게도 ‘배들리 드론 보이’(Badly Drawn Boy)가 맡았다. 본명이 데이먼 고흐( Damon Gogh)인 그는 맨체스터 신의 자식이다. 스톤 로지스(Stone Roses)와 해피 먼데이스(Happy Mondays)를 필두로, 영국의 맨체스터는 1980년 동안 ‘매드체스터’라는 별명을 얻은 바 있다. 매드체스터는 해피 먼데이스의 노래 제목이기도 하고 장르의 이름이기도 하다. 매드체스터의 특징은 멜로디와 댄스 비트의 결합이다. 1980년대의 뉴웨이브와 다른 점은 전형적인 기타 팝 밴드 형식의 복고적 포맷이라는 점, 비슷한 점은 춤추기 좋은 비트를 반복시킨다는 점. 매드체스터의 또 다른 특징은 ‘사이키델릭’하다는 것. 매드체스터는 1980년대 후반부터 탄력을 받은 영국 경제의 부흥과 관계가 많다. 많은 노동계급 젊은이들이 다시 회색빛 잿더미를 배경으로 희망을 노래하기 시작했고 히피들처럼 집단적으로 환각제를 사용했다. 몽환적이고 우울한 희망, 그게 매드체스터의 정신이다.

배들리 드론 보이는 바로 그런 매드체스터의 다음 세대 뮤지션이라 할 수 있다. 그의 음악은 언뜻 들으면 1970년대 중반의 티 렉스 같은 글램 록 밴드의 부드러운 쪽을 그냥 답습하는 것같이 들린다. 멜로디가 그만큼 쉽고 귀에 확 들어오며 정겹다. 그러나 자세히 들으면 그의 음악은 일종의 일렉트로니카다. 드럼 비트도 그냥 친 것 같지만 컴퓨터 기기로 샘플링하여 돌리는 경우가 많다. 그 모든 것을 거의 혼자 해낸다. 그래서 그는 밴드 포맷의 전통적인 록 뮤지션들보다는 ‘침실 실험가들’쪽에 더 가깝다.

개인적으로 그의 음악을 먼저 들었을 때에는 몹시 사이키델릭하게 들렸다. 꽤 비일상적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영화의 일상적인 분위기에 딱 맞는 걸 보며 신기하다고 느꼈다. 그런데 그 다음에, 그의 음악으로 채워진 O.S.T를 들으니 다시 몽환적이고 비일상적으로 들린다. 이렇게 사이키델릭했는데 영화 속에서는 왜 그렇게 느껴지지 않았지? 만일 이런 걸 의식하면서 영화를 다시 본다면 어떻게 될까? 사실 그렇게 되면 그건 영화를 보는 것이 아니라 ‘인식’하는 행위가 될 것이다. 영화를 본다는 행위는 참 우리 감각기관들을 매우 복잡하게 작용시키는 것 같다.

O.S.T에는 좋은 노래들이 많이 수록되어 있다. 뮤직비디오로도 커트된 주제곡 <Something to Talk About>은 정답고 <Silent Sigh>는 몽환적이다. 그 이외에도 짧은 노래들까지 쳐서 모두 16트랙이 수록되어 있다. 영국 모던 록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앨범이라 할 만하다. 성기완/ 대중음악평론가 creole@hite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