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agazine > 스페셜 > 스페셜1
1960∼2002 되짚어보는 충무로 검열의 역사(4)
이영진 2002-08-30

정권은 가도 검열은 남았다

“내가 바라는 건 영화가 관객과 만나서 논쟁을 던지길 바라는 거다. 원래 논쟁을 던지는 스타일로 영화를 해왔고, 앞으론 반성하겠지만, 그런 점에서 <거짓말>은 논쟁의 깊이나 크기에서 성공적이라고 본다. 그런데 왜 논쟁을 막나. 논쟁 자체가 위험한 게 아니라 논쟁을 막는 게 위험하다. 다른 사람들을 가르친다고 생각하는 게 문제다. 하기야 그런 사람들 때문에 이런 영화를 만든다. 변하길 바라면서.”(장선우, 감독 <씨네21> 225호)

1990년

3당통합. 광주민중항쟁 10주기 추모집회 개최. 정부, 활개치는 흉악범 소탕을 위해 폭력범죄와의 전쟁 선포. 한국영화 감독위원회, ‘당국의 영화탄압정책에 즈음하여’라는 성명을 발표해서, 공연윤리위원회 철폐. 민간자율심의기구 구성 주장.

<장군의 아들>의 기록적인 흥행에 힘입어서일까. 명백한 검열기구였던 공륜에 대한 영화인들의 철폐 주장이 터져나왔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한 해다. 이에 공륜 역시 가위질을 자제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근본적인 해결이 없는 한 어차피 공방은 또다시 이뤄지게 마련. 11월에 80년 광주를 그린 이정국 감독의 <부활의 노래>가 심의 과정에서 25분13초를 삭제당하면서 논란이 일었다. 특히 <부활의 노래>는 감독이 심의 전에 초반 16분을 자진 삭제한 뒤 심의신청을 했으나, 공륜은 횃불시위 장면, 도청 총격전 등과 “폭도라는 이유로 병원에서 쫓겨났어” 등의 대사를 추가로 잘라냈다. 공륜은 “광주운동의 아픔을 마무리해가고 있는 현 시점에서 이 작품의 공개는 적절치 않으며… 민중에 대한 무장봉기를 무조건 정당화하는 데 그쳤다”는 사유서를 제작사쪽에 보냈다. 이 작품은 재심 끝에 93년에야 개봉할 수 있었다.

1995년

대법원, 5명을 살해 납치한 지존파 일당에 사형 확정. <즐거운 사라> 저자 마광수 교수 유죄확정. 변태적인 성행위와 혼음, 동성연애 등을 노골적으로 묘사하였다는 이유로 유죄확정. 연극 <미란다> 음란성 인정, 유죄선고. 동성동본 혼인 특례법 시행. 황혼기 이혼율 증가.

<해적>을 둘러싼 논란은 해를 넘겨 이어졌다. 박성배 감독이 연출한 <해적>은 폭력배를 앞세운 양식업자에 맞서 싸우는 한 청년을 그린 액션영화. 94년 11월4일 심의를 받은 결과, 무려 35군데 93컷이 잘려나갔다. 이 상황에서 제작사는 이튿날 개봉일에 맞춰 극장에 걸었다. 문제는 잘려나간 12군데 36컷의 경우 공륜 심의위원회가 결정한 것이 아니라 공륜 사무국 영화부장과 영사기사가 임의대로 자른 것이 드러나면서부터. 영화를 보고 모방 살인을 저질렀다는 지존파 사건 이후 공륜이 너무 관대한 것 아니냐며 일부 언론으로부터 따가운 시선을 받았던 터라 규정을 어기면서까지 가위질을 해댄 것이다. 폭력성에 대한 사회의 비난을 면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는 행위였다는 항변도 그럴듯하지만, 해당장면 중에는 범죄집단과 정치권이 손을 잡고 있음을 은밀히 드러내는 장면까지 포함되어 있어 변명치곤 허점이 많다. 제작사쪽이 공륜 사무국을 형사고발하고 잘리지 않은 작품을 극장에서 상영하면서 공륜의 자세는 한결 수그러들었다.

1996년, 그 이후

검열에 대한 철퇴는 1996년 10월4일에 이뤄졌다. 헌법재판소는 “영화 사전심의가 위헌”이라는 결정을 내린다. 박정희 군사정권이 1963년 검열의 근거를 개정헌법에 둔 지 36년 만의 일이다. “검열은 명백히 위헌”임이 밝혀졌으나, 표현의 자유에의 문은 쉬이 열리지 않았다. 공륜 해체 이후 공진협을 거쳐 지난 2000년 영상물등급위원회가 문을 열었지만, 영화진흥법상 ‘등급을 보류할 수 있다’는 해괴하고 애매한 조항을 내세워 영화인들의 속을 태웠다. <거짓말> <노랑머리> 등이 대표적인 케이스. 문제가 된 장면을 감독과 제작자가 삭제하지 않는 한 상영등급 분류를 내주지 않는 이 조항으로 말미암아 직접 자르지 않을 뿐 등급위 역시 기존 검열기구와 다를 바 없다는 비판을 들었다. 국회가 나서 한때 ‘등급보류 폐지, 제한상영관 설치’를 내용으로 하는 개정안을 올렸지만, 여야가 의견을 좁히지 못해 개정안이 계류되기도 했다. 다시 급물살을 타게 된 건 <둘 하나 섹스>가 헌법소원을 청구했고, 지난해 8월 헌재가 “등급보류 역시 사전 검열이며, 이는 위헌”이라는 재확인 결정을 내리면서부터다. 이로 인해 개정 과정에서 애초 영화진흥법 개정안에 포함될 것으로 보였던 상영등급 거부(타 법에 저촉될 시에 등급분류를 거부할 수 있다)라는 독소 조항이 빠지게 됐다.

올해 들어서 영화진흥법이 새로 시행됐지만, <죽어도 좋아> 사태에서 보이듯 아직 가야 할 길은 멀다. 제한상영관은 마련되지 않았고, 무엇보다 과거 심의기준과 다를 바 없는 논리는 여전히 강고하다. 100년 충무로 검열사를 돌이킨 데는 한국영상자료원 어느 창고에 처박혀 있을 잘려나간 필름조각들에 대한 애도를 표하고자 함이 아니라 시대의 변화를 따르지 못할 경우 발생하는 문화적인 손실에 대한 경고에 가깝다.

독립영화 검열 투쟁사사전심의를 거부한다!

밟힐수록 일어선다?표현의 자유를 쟁취하는 과정에서 독립영화는 항상 선두에 섰다. 이들이 가장 먼저 물고늘어진 건 “제작하는 모든 영화는 등록해야 한다”(제4조제1항) “모든 상영영화는 사전심의를 받아야 한다”(제12조제1항)는 영화법 조항. <파랑새> <오! 꿈의 나라><어머니, 당신의 아들> 등이 이를 위반했다는 이유로 입건됐으며, 공판 과정에서 “16mm 영화는 영화법 적용대상이 아니다”고 주장했으나 묵살됐다. 사전심의 위헌판결을 이끌어낸 건 92년 장산곶매가 제작한 <닫힌 교문을 열며>다. 입시교육을 소재로 삼았던 이 영화를 당시 전국의 대학가를 돌며 상영한 것과 관련, 장산곶매 대표 강헌씨가 고발조치됐고, 검찰의 불구속기소 처분에 굴하지 않고 위헌법률제청을 신청해서 결국 96년 헌재로부터 사전심의 위헌이라는 결정을 받아냈다. 97년 제작된 <레드헌트>는 제주 4·3항쟁을 다뤘다는 이유로 국가보안법상 이적표현물 혐의가 씌워져 한때 조성봉 감독이 조사를 받았으나 법원이 구속영장 신청을 기각했다. 이후 <레드헌트>는 인권영화제에서 상영을 강행하던 인권운동사랑방 대표 서준식씨가 98년 1월 인권운동사랑방 대표 서준식씨가 구소기소되는 상황이 벌어졌다. 그러나 이듬해 9월 서울지법으로부터 무죄판결이 내려졌다. 이지상 감독의 <둘 하나 섹스>는 <거짓말><노랑머리>에 이어 99년 9월 등급보류 결정을 받아 개봉이 불투명해졌으나, 이후 헌법소원을 내서 영상물등급위원회의 등급보류 조치가 위헌이라는 결정을 끌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