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나 신비로운가? 심야 만화방에서 컵라면과 과자 몇 봉지를 끼니 삼아 하룻밤에 수십권의 만화책을 읽어치우는 남자들. 1시간에 1권도 읽을까 말까 한 나 같은 작자는 감히 쳐다보기도 힘든 무공이다. 아니 더욱 신기한 것은, 그들을 위해 한달에 서로 다른 6개 테마로 단행본 10권을 뽑아내는 만화가(2002년 7월의 김성모)라고나 할까? 이 창작과 감상, 아니 생산과 소비의 황당함은 그 작품 속에서도 그대로 이어져 108계단 40단 콤보와 같은 초절의 기술로 우리의 뼈와 살을 분리하고 있다. 그러나 과연 이러한 만화들을 단순한 유행어 몇 마디와 함께 웃어넘길 수 있을까? 무엇이 그 만화를 보게 할까? 거기에는 남자들을 들뜨게 하는 부정할 수 없는 쾌락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황당무계 남성폭력만화의 공고한 전통은 수십년 전 일본에서부터 굳건히 존속되어왔다. 최근 전 34권으로 번역 완결된 미야시타 아키라의 <돌격 남자 훈련소>(대원씨아이)는 그 세계의 비밀을 알려주는 중요한 작품이다.
남자 훈련소는 일본 전역에서 최고의 주먹들과 문제아들을 모아놓은 사립학교다. 태평양전쟁 당시 전설의 군인이었던 소장 에다지마 헤이하치는 당시의 군대를 연상시키는 철저한 규율과 구타, 고문이 성행하는 폭력적인 방식으로 이들을 강한 남자로 키운다. 조사하러 간 국회의원들은 시대착오적인 군국주의 교육을 성토하지만, 소장은 자신의 대머리에 윤을 내며 ‘당신들의 잘난 민주주의는 머리만 컸을 뿐 혼자선 화장실도 못 가는 약골들만 만들어냈다’며 코웃음친다. 왠지 일본 극우파의 기관지 만화 같지만 작품을 조금만 읽어들어가면 그 실체를 알게 된다. 이들은 근엄한 표정으로 할복을 한다며 칼로 배를 찌르지만 곧 고양이를 배에 넣어 허풍을 친 게 들통나고, 헌팅하려던 여자를 외국인에게 뺏기자 애국심을 핑계로 달려들다 망신을 당하고 만다. 용감한 척하지만 머리는 딱딱하게 굳어 있고 얼치기 허풍만 가득한 이 남자들 앞에 진짜 의리와 주먹으로 무장한 사나이 테츠오가 나타나고, 그를 중심으로 제법 남자다운 싸움이 시작된다. 그래도 스스로가 허풍임을 절대 부정하지 않는다.
<북두의 권> <멋진 남자 김태랑> <공작왕>, 그리고 국내의 각종 ‘짱’ 시리즈들처럼 강한 남자 신드롬으로 무장한 만화세계가 있다. 이것은 가히 남자들의 판타지로, 단순히 ‘세다’ 정도가 아니라 신체와 물리학의 한계를 넘어서는 각종의 무공들이 등장하고, 그것이 또한 계단식으로 성장해 끝을 알 수 없이 증폭돼간다. 물론 그 세계의 환상 속에 동참한 사람들은 마치 자신이 주인공이라도 된 양 만화책을 바닥에 던지고 혼자서 허공을 가르며 무협영화의 한 장면을 연출할 것이다. 하지만 조금만 옆에서 보면 그 허튼 짓거리에 웃음을 터뜨리지 않을 수 없다. 1985년에 시작된 <돌격 남자 훈련소>(원제: 魁!!男塾)는 이러한 허황된 폭력의 코믹성을 선도적으로 눈치채고, 황당무계의 극한으로 달려나가 힘과 웃음을 한꺼번에 터뜨려낸 작품이다.연재 초반에는 남자 훈련소에 새로 들어온 신입생들이 기득권층인 고학년, 그리고 교관들의 절대봉건주의에 맞서 싸우는 에피소드들이 중심이 되어 있다. 신입생 혹은 전학생 주인공이 학교 짱과 부하들을 처치하고 권력을 접수한다는 학원물의 공식과도 거의 일치한다. 하지만 황당한 캐릭터들의 자학적인 혹은 가학적인 개그들이 연이어져, 싸움의 매력보다는 정신없이 치고 받는 폭소 불꽃놀이의 즐거움이 더 크다. 연재 중반으로 들어가면서 초반의 어설픈 그림체도 자리잡게 되고, 내용상으로도 실력자 캐릭터들이 대거 팀에 들어와 천도오륜 대무회 등에 출전하면서 웃음 이상으로 ‘승부’의 즐거움에 초점을 맞춘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하지만 그 황당무계함은 결코 뒷걸음질칠 리가 없다. 황산 연못에 녹지 않는 종잇조각을 띄워놓고 그 위를 경이적인 속도로 달려가는 ‘순교찰구’의 고행이 등장하고, 달리는 소의 뼈를 발라내는 진공섬풍충과 같은 가공할 필살기들이 맞부닥친다.
재미있는 사실은 이처럼 허풍임에 분명한 설정들을 여러 역사적인 사건과 문헌, 과학적 이론 등을 통해 굳이 설명하려 든다는 것이다. 이러한 경향은 비슷한 부류의 필살기 만화에 넓게 번져 있는데, <조조의 기묘한 모험> 같은 작품은 깨알 같은 글씨로 고난도의 수학적 과학적 설명을 덧붙이는 일종의 ‘이론에 대한 패티시즘’ 경향까지 보인다. 하지만 그런 설명들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독자는 거의 없을 것이다. 그것은 이들 만화에서 “후회는 없다. 너 같은 남자에게 진 거라면” 식의 남자의 의리에 기반한 닭살 돋는 대사들과 마찬가지로, 지나친 진지함으로 더 큰 웃음을 만들어내는 장치가 돼렸다.
한때 청소년 폭력의 성전 취급을 받고 ‘일진회’를 보통명사로 만들어버린 <비바 블루스> 사건을 우리는 잊지 않는다. 이들 만화 속에서 남성적인 폭력에 대한 지나친 숭배를 찾을 수 없다고는 말하지 않겠다. 하지만 이미 많은 독자들은 그 폭력에 대한 욕망을 만화 속에서 해소하며, 또 그 폭력의 허항됨을 한 단계 위의 웃음으로 즐기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주었으면 한다.이명석/ 프로젝트 사탕발림 운영중 www.sugarspray.com